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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공직선거가 없는 해다. 지난해 6월에 지방선거가 있었고, 국정을 책임질 대표자를 뽑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는 내년 4월에 있기에 그렇다.

새내기 선거관리위원회 공무원으로서 지난해 지방선거를 첫 선거로 치렀다. 선거일 전후 2개월여를 주말도 없이 출근하며 밤늦게까지 선거업무를 처리해야 했다. 선거일 새벽에 출근해 다음날 아침에 퇴근할 때는 거의 파김치가 된 느낌이었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조력자라는 긍지가 개표일 새벽 4시, 쉬지 않고 근무한 지 이미 24시간이 지났던 순간에도 나를 깨어있게 했던 힘이었다.

선거는 우리 선거관리위원회 공무원에게도 힘들지만 뙤약볕에서 한 표를 호소하는 후보자에게도 고통을 참는 인내의 시간이다. 어떤 지방선거 후보자는 몸무게가 10㎏이 줄어 맞는 옷이 없다고도 했다. 이처럼 커다란 고통이 수반되는 공직선거가 올해엔 없지만 새로운 선거 하나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바로 농협조합장선거다. 지역에 따라서는 수협조합장 선거, 산림조합장 선거도 치른다. '전국동시 조합장 선거'라는 정식 명칭만 봐도 알 수 있듯 이 모든 선거가 오는 3월 13일에 전국적으로 동시에 치러진다.

조합은 조합원들의 출자금을 근간으로 해 영리활동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고 그에 따른 이익 배당을 하며 운영하는 단체이다. 영세한 농·어민들에게 있어 자신의 자산을 늘려 주고 영농 보조도 해 주는 등 순기능적 면모가 크다. 그러한 조합의 장을 뽑는 선거를 법 개정으로 우리 선거관리위원회가 관리하게 되면서, 또 하나의 공직선거 못지않은 큰 선거로 다가 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조합장 선거를 두고 말이 많다.

조합장 선거는 '돈선거'라고 말이다. 2015년에 치러진 제1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에서 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법 위반으로 적발한 건수가 전국적으로 860건에 이른다. 이 중 기부행위가 340여 건으로 40%를 상회했다. 통계가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부모님도 나도 조합원이 아니기에 몰랐던 사실을 선거관리위원회 공무원이 되고서야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알아서 좋은 일이 있는 반면 알지 말았으면 하는 경우도 있다. 내 경우 후자가 확실하다. '농협'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건물은 나에게 아주 친근하게 느껴졌는데 말이다.

조합장 선거가 돈선거라는 얘기는 나를 부담스럽게 한다. 이러한 돈선거를 공명선거로 고쳐 가는 것이 나의 몫이고 선거관리위원회 공무원으로서 해야 할 일이다. 조합장 선거는 혈연·지연 등이 작용하는 대표적 연고주의 선거다. 그러다 보니 돈이 오고가도 섣불리 드러나지 않는다. 금권선거는 조합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 당선을 위해 뿌린 그 돈은 후보자의 돈일진 몰라도 나중엔 조합원이 그 돈을 갚는 격이다.

신념도 없이 돈으로 당선된 후보자가 무엇 하나 제대로 하겠는가? 경영이 부실하니 이윤이 발생할 수 없고 조합원에게 돌아가야 할 배당금도 턱없이 적을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결국 조합원들이 후보자에게 받은 그 돈 이상의 몫을 정당하게 받아야 할 배당금에서 갚는 셈이다.

이러한 관행을 없애기 위해 후보자는 주지 말고 유권자인 조합원은 받지 말아야 한다. 주고 싶고 받고 싶은 유혹을 뼈를 깎는 마음으로 뿌리쳐야 한다. 정책으로 승부하고 정책으로 판단하는 선진 선거문화로 탈바꿈해야 한다. 호수 위를 우아하게 노니는 백조의 아름다움은 보이지 않는 물 속에서 자신의 물갈퀴를 수 없이 젓는 고통을 감내한 결과다. 조합장  선거 또한, 아름다운 선거가 되려면 후보자와 조합원 모두 남이 볼 수 없는 마음의 유혹을 뿌리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이번 조합장 선거가 그런 아름다운 선거가 되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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