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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전선

박명숙

생각을 겨루듯 까마귀들이 앉아 있다
나는 일은 언제나 거기서 거기일 뿐
칼집 속 날을 여미고 무장한 채 앉아 있다

칸칸이 한 채씩의 가옥처럼 들어 앉아
갑옷을 스쳐가는 낯선 바람은 쓸 만한지
골똘히 삼매에 빠진 풍찬노숙의 검객들

칼집 속 긴 생각은 언제쯤 꺼내 드나
외가닥 겨울 화두로 흐르는 검은 눈들이
타드는 전선 위에서 용맹정진 묵상 중이다

△박명숙: 중앙일보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열린시학상 중앙시조대상 이호우·이영도 시조문학상 외, 시집 『은빛 소나기』 『어머니와 어머니가』 『찔레꽃 수제비』 『그늘의 문장』 등

 

이서원 시인

분명 제목의 전선(電線)은 전깃줄을 의미할 터인데도 읽으면 읽을수록 전선(戰線)이 전쟁에서 직접 전투가 벌어지는 지역이나 그런 지역을 가상적으로 연결한 선으로 읽혀진다. 그만큼 시의 전개 방식이 긴장감과 함께 시어들이 '칼' '날' '검객' '무장' 등 사뭇 곧 출정식을 앞둔 초, 한전처럼 비장하기만 하다.
생각과 생각을 거듭하며 적진의 약점을 찾아내어 공격해야만 하는 검객은 나는(飛) 일보다 더 중요한 작전이 필수 조건이다. 그 일이야 말로 승패를 좌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날을 여미고 한시도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전선에 앉아서 탐색과 전망을 게을리 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이 걸쳐 입은 검은 갑옷으로 스쳐가는 미세한 바람 한 점에도 촉각의 온 신경을 집중한다. 바람의 방향과 냄새 심지어 풍속의 깊이까지도 놓쳐서는 고수라 할 수 없다. 겨울 강바람이 아무리 매서울지라도 날마다 풍찬노숙에서 자신과의 고독한 맞대결을 마다하지 않는다. 결기의 칼날을 쉽게 꺼내 들면 오히려 그 칼끝이 자신의 심장을 겨눌 수 있다. 오로지 형세를 파악하고 적을 단박에 베어버리는 진중함만이 자신을 최고의 무림고수의 반열에 올려놓을 수 있다고 믿는다. 하여, 한 번 날았다 하면 천 리도 마다하지 않고 비상할 수 있어야 하며 적진을 파악하고 이때다 싶을 땐 비수처럼 혼신을 다해 상대의 중심부를 단칼에 내리쳐야만 한다.


외가닥 전깃줄에 앉아 겨울 화두인 자신만의 공략법을 찾아내는 그날까지 용맹정진하는 저 겨울 까마귀가 미덥다. 작가라면 모름지기 이와 같아야 하리라. 검은 칼집과도 같은 문장의 고독한 글쓰기 속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문학의 웅숭깊은 내면의 자각적 인식을 통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시인이라는 검객이 되어야만 한다. 
독창적인 문장을 찾아서 적을 겨누듯 꿰뚫어보는 감각적 경지에 오르는 그날까지 백만 볼트 전기가 흐르는 전선에 앉아서라도 마치 땅 위에 서 있는 듯 그 자리를 잊어야만 하리라. 이서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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