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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전, 남편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남편을 잃은 슬픔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그 보다도 돌도 안 된 딸아이와 단 둘이 남겨졌다는 사실에 충격과 불안감이 엄습했다. 당시엔 정말이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눈앞이 캄캄했다. 처음엔 아이도 어려서 동사무소를 통해 기초생활수급자로 도움을 받아 근근이 생활할 수 있었다.

딸아이가 국공립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는 4살이 되어서는 어느 정도 시간을 낼 수 있어서 파트타임으로 학교급식 보조 등 이런 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며 겨우 생계를 꾸려갔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남구지역자활센터를 알게 되었다. 가사간병사업단에 2년 정도 참여했고 2012년도엔 청소사업단으로 옮겨 2년 8개월 정도 근무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다양한 교육과 전문적인 기술 습득 기회를 얻었고 이를 통해 자신감을 쌓아 나갈 수 있었다. 마침내 2014년 9월 1일, 자활기업 '깔끄미 청소'를 창업해 독립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남구지역 11개의 거래처를 시작으로 연매출 1,500만 원 정도를 올렸다. 그리 많은 창출은 하지 못했으나 그래도 할만 했다. 지속적으로 고정 거래처들을 관리하면서 성실함과 책임감으로 고객 만족에 최선을 다했다.

특히 타 업체와의 차별화를 통해 거래처를 꾸준히 확대해 나갔다. 이런 노력 덕분에 현재는 학교, 일반 기업체, 원룸 등 25개 거래처를 확보하게 되었고 연매출도 4,000만 원 정도에 이르렀다. 2018년 3월에는 드디어 수급자에서 탈피해 다른 업체들과 당당히 경쟁하는 자랑스러운 기업체 대표로 진정한 홀로서기에 성공하였다.

지금은 어려웠던 시절 나에게 도움을 준 이들을 생각하며 또 다른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것으로 삶의 보람을 찾고 있다. 우연히 알게 된 소아마비 장애를 가진 어르신을 짬이 날 때마다 찾아가서 청소, 밑반찬, 김장 등 가사 일을 도와드리고 말벗도 하고 있다. 비록 2명이지만 나 같은 저소득층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면서 가족처럼 챙기고 있다.

몇 년 전의 일이었다. 우리 직원 중 치아가 한 개도 없는 50대의 김모 씨와 같이 점심을 먹던 중 음식을 잘 먹지 못해 사유를 물어보니 며칠 전 목에 걸린 생선가시 때문에 아파서 먹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일가친척 하나 없이 혼자 살고 있었던 탓에 어디 얘기할 곳도, 도움을 청할 데도 없었다고 했다.

이에 조금이라도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인근 병원에 데리고 가서 진료를 받았더니 더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그래서 대학병원에 입원시켜 식도에 천공을 낸 가시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하마터면 천공으로 인한 복막염으로 목숨이 위태로웠을 수도 있었다는 의사의 얘기를 듣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금은 딸아이도 학교 졸업 후 물리치료사로 취업하여 지난 이야기를 웃으면서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가장 어려웠던 그 시절, 좌절하지 않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버틸 수 있게 도움을 주었던 것은 남구청과 동사무소 공무원들이었다. 또한 내가 창업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움을 준 남구지역자활센터 직원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내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챙기며 작은 것이라도 나누며 살고 싶다. 그리고 나처럼 좌절하고 있을 그 누군가에게 말해 주고 싶다. "절망스러울 때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면 누군가는 꼭 대답해 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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