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귀
깨끗한 귀
  • 울산신문
  • 승인 2019.02.1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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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일 수필가

귀에 문제가 생겼다. 가끔 잠들기 전이나 새벽에 귓속이 심하게 가려워지는데 언제부턴가 아프기까지 하다.

어렵게 시간을 내어 병원에 가니 의사선생님은 귀가 너무 깨끗하다고 한다. 자신의 귀속을 보여주는데 지저분한 것이 많이 있었다. 이에 비해 내 귓속은 상대적으로 깨끗하다. 파열된 상처도 보였다. 귓속이 이상하면 귀청소를 자주 했는데 그러다보니 귀가 더 아파지는 악순환이 된 것이다. 귓속에 처방된 약을 넣고 진통제를 먹으면서 일단 증상은 완화되었지만 귀가 깨끗해서 아프다는 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보통 우리몸에서 더러워서 아픈 경우는 있지만 깨끗해서 문제가 된다는 생각은 안하는 듯 하다. 그러나 너무 깨끗하면 면역계통에 문제가 생긴다. 체내세균이 부족하면 탈이 난다고도 한다. 

그런데 귀가 깨끗하다는 말은 세균이나 이물질이 없다는 생물학적인 해석에만 머무를 수 없다. 남의 말을 잘 듣는다는 말로 생각할 수 있다. 병이 되는 것은 말을 너무 잘 들어서 심리적인 상처를 입는다는 말이 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말하기를 조심하라는 충고는 많다. 말이 많아지면 실수를 하게 마련이다. 조심성 없는 말은 남을 해하는 흉기가 된다. 말 때문에 남을 해하거나 화를 입은 사람이 많다. 

그러나 듣기를 자제하라는 말은 별로 없었다. 말을 듣는 것은 적극적인 행동이 아니라서 남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는 인식 때문이다. 오히려 말을 더 많이 들으라고 한다. 입은 하나지만 귀는 둘인 이유는 말하기 보다는 듣기를 많이 하라는 신의 지시라는 말도 있다. 예외적으로 중국에는 불의한 제안을 들은 후 귀를 씻었다는 고사가 있기는 하다.(소부와 허유)

그런데 현실적으로 험한 세상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말을 가려서 들어야 한다. 성인의 경전이 아닌 현실적인 처세술에는 남의 말을 함부로 믿지 말라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남의 말에 속아 고생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의심하는 습관이 몸에 배게 된다.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은 때가 덜 묻은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뭘 모르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남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는 이유는 많다. 남의 말을 그대로 듣다가는 사기를 당하거나 재산을 날리게 되어 세상에서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는 남의 말을 잘 들어서 문제가 된다. 

요즘 가짜뉴스가 많다. 가짜뉴스를 가려주는 사람도 역시 믿지 못한다. 어릴 때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못 믿더라도 활자화되거나 TV에 나온 말은 그대로 믿었는데 요즘은 그런 것도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나는 비교적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에 속한다. 손해도 많이 보았다. 그래서 어리숙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내 얼굴을 보면 속여먹기 쉽게 생겼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그러나 내가 남에게 하는 말도 100% 진담이라고 자신할 수 없다. 악의가 없는 사람도 하얀 거짓말을 하곤 한다. 농담과 거짓말의 경계도 모호하다.

물리적으로도 자신에게 향하는 모든 말을 다 들을 시간이 없다. 무분별하게 전달되는 말을 사전에 차단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필터링이 필요하다. 특히 조직의 차원에서는 필터링이 매우 중요하다. 제대로 된 조직에서는 외부의 말이 의사를 결정하는 장에게 직접 전달되기 전에 먼저 듣고 걸러주는 게이트 키퍼가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만 의존하면 소통이 안된다. 옛날 구중궁궐에 사는 임금이 민의를 왜곡하는 신하들에게 막혀 바깥의 말을 듣지 못해 비극이 되기도 했다. 남의 말을 많이 듣다보면 짜증이 나기도 한다. 충언은 본래 귀에 거슬리게 마련이다. 역린을 건드리면 성군이라도 화를 낸다. 요즘 명절날 오랜만에 만난 친척의 잔소리가 스트레스라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듣고 싶은 말만 듣는 것도 문제이긴 하다. 자신의 신념에 맞지않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한다. 그러다 보니 진짜 필요한 말은 듣지 못한다.

깨끗한 귀가 아픔이 되는 것은 인생의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불신이 만연하여 남의 말을 믿을 수가 없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무서워진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남을 불신할 수만은 없다. 남의 말을 믿지 못하는 세상에 신뢰를 심기 위해서는 아픈귀는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할 운명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