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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2차 정상회담이 열리는 베트남 하노이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는 북미 회담을 1주일 앞두고 막판 준비로 분주한 모습이다. 특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문에 앞서 정상이 묵을 것으로 예상하는 숙소와 회담장을 중심으로 경호·경비가 대폭 강화돼 긴장감마저 감돌고 있다.

회담지로 낙점된 베트남은 한 때 전쟁의 중심이었고 그 하늘에서 미군과 북한군은 생명을 내건 전투를 벌였다. 당시 북한이 베트남 전쟁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진영 전쟁으로 규정하고, 수백 명의 공군 지원군을 파견하면서 펼쳐진 상황이었다.

지난해 9월 9일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뜻밖의 장면이 눈길을 끌었다. 베트남전 참전 공군 종대가 사상 처음으로 등장해 김일성광장을 행진한 것. 북한 조선중앙TV는 "비엣남(베트남)전쟁에 참가해 수적·기술적 우세를 자랑하던 적의 공중 비적들을 무자비하게 박살내어 조선인민군의 본때를 남김없이 보여준 공군 종대가 나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베트남 참전 사실을 숨기던 북한이 외부에 이를 당당히 공개한 것이다.

하지만 50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하노이는 베트남 속 작은 한국이라 불릴만큼 한국과 관련된 곳이 많다. 실제로 하노이에서는 한국의 발전된 경제상과 기업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KOTRA에 따르면 베트남 진출 한국 기업은 올들어 7,000곳을 돌파한 것으로 파악된다. 하노이 거주 한국 교민은 7만 명에 육박한다는 게 현지 분위기다. 하노이 인근 박닌과 타이응우옌에 자리잡은 삼성전자 공장은 매년 삼성전자가 생산하는 전 세계 스마트폰 물량의 약 절반(1억 6,000만 대)을 만들고 있다. 삼성전자가 베트남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가 넘는다.

하노이는 '강(河)'의 '안쪽(內)'에 있다는 뜻에서 유래한 도시다. 기원전 3000년부터 사람이 거주한 것으로 알려진다. 11세기 리 왕조가 수도로 삼은 이후 '승천하는 용'이란 뜻의 '탕렁'이라 불렸고 이후 1000년 역사 동안 베트남 수도 역할을 했다. 하노이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1831년 부터다. 1887년에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1940~1945년은 일본 점령하에 있었다. 베트남 국부로 추앙받는 호찌민 전 주석이 하노이에 있는 바딘 광장에서 1945년 9월 베트남 민주공화국 독립을 선언하며 항쟁의 중심에 섰다.

1954년부터 베트남전이 끝날 때까지 북베트남 수도였다가 1976년 남베트남이 멸망하면서 통일 베트남의 수도가 됐다. 김일성 북한 전 주석이 1958년 11월과 1964년 10월에 방문해 호찌민 당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한 인연도 있다. 이달 미북 정상회담차 베트남에 방문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54년여 만에 하노이를 찾는 북한 최고 지도자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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