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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의회가 청소년 정책에 당사자인 청소년의 참여권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에 나선 '울산시 청소년의회 구성 조례'가 학부모들의 거센 반대에 밀려 표류하고 있다. 사전조율이나 준비 부족이 부른 갈등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울산시의회 운영위원회는 지난주 더불어민주당 이미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울산시 청소년의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조례안'을 처리할 예정이었으나 학부모단체의 저지로 조례안 상정은 물론 회의조차도 열지 못하고 물러섰다. 

지난달 31일에 이어 두 번째 시도된 이 날 운영위 개최까지 무산되면서 2월 임시회에서의 조례안 처리는 사실상 어렵게 됐다. 시의회에는 운영위의 조례안 상정 소식을 접한 학부모 80여 명이 몰려와 거세게 항의했다. 다세움 학부모회원 등은 '우리 아이들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 말라', '아이들의 학습권을 보장하라', '어른들 정치판을 학교로 옮길 생각이냐'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어 조례안 철회를 요구했다. 

학부모들의 항의를 받은 안도영 의회운영위원장이 나서 "오늘 운영위에서는 청소년의회 조례를 상정하지 않을 것"이라며 회의를 취소했는데도 학부모들의 고성은 그치지 않았다. 한 학부모는 "청소년의회 조례를 상정한다는 소식을 듣고 회사 연가까지 내고 왔는데, 시의회가 시민을 조롱하는 것도 아니고, 안건을 갖고 난장질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결국 이들 학부모들의 반대로 의회운영위가 취소되자 시의회 안팎에서는 청소년의회 구성에 대한 학부모단체의 반대에다 법적 지위를 갖는 청소년의회를 만드는 데 대해 시민사회의 여론도 좋지 않은 점을 고려할 때 조례 제정은 어렵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실제로 조례안이 시의회를 통과할 경우, 청소년의회 구성을 위해 울산지역 전체 중·고등학생들을 유권자로 하는 일제 선거를 해야 하는데, 선거비용과 선거 관리는 누가 할 것이며, 과당경쟁에 따른 후유증과 청소년의원 관리 문제 등 각종 부작용은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는 지적과 비관론이 만만찮게 제기되고 있다.

조례안을 대표 발의한 이미영 의원은 "청소년의회는 서울, 부산, 대전, 경기, 인천 등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꼭 다른 곳에서 하고 있어서, 또는 법적으로 해야만 해서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문제"라며 강행 입장을 밝혀 당분간 이를 둘러싼 논란과 갈등이 해소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논란의 대상인 청소년의회 조례안은 울산의 중·고교 재학생 중인 만 12세 이상 18세 이하 청소년이 주체가 돼 청소년의 정치적 참정권과 권리를 대변하기 위해 울산시의회 운영방식과 유사하게 진행하는 의회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조례안에선 청소년의회는 청소년 정책과 예산에 관한 의견수렴, 토론, 참여 활동을 하고, 수렴된 의견을 반영한 정책과 사업, 예산반영, 입법안 의견을 낼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청소년의회 의원은 임기 2년에 25명으로 구성되며, 격년제로 7월에 선출된다. 또 의장 1명과 부의장 2명으로 의장단을 구성할 수 있고, 의장은 청소년의회를 대표해 안건을 직권 발의할 수 있다. 아울러 시의회처럼 원활한 정책제안과 논의를 위해 5개 이내 분야별 상임위원회를 둘 수 있다. 이밖에도 시장은 청소년의회를 위해 의원 신분증, 배지 등 운영에 필요한 경비, 교육과 견학 비용 등을 지원하는 규정도 담고 있다.

청소년의회 조례안의 취지는 무엇보다 청소년들이 우리 사회의 한 일원으로 당당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조치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절차에 있다. 아무리 뜻이 옳고 좋다고 해도 조례를 제정해 공표하는 것은 합리적 의사결정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마땅하다. 조례제정의 절차나 합당한 과정을 거쳤으니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청소년의회 조례의 경우는 문제가 달라진다.  

인근 경남도의 경우 학생인권조례안을 만들면서 학계·노동계·시민단체 등 23명이 참여한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수개월 동안 인권 친화적인 학교문화 조성 종합계획을 수립했다. 이와 함께 그 계획을 기초로 조례안을 입안하고 헌법과 유엔의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에 바탕하여 학생의 인권과 교육복지권을 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조례안은 찬반 갈등에 휘말려 조례제정에 반대하는 단체들이 극렬한 반대 집회를 벌이는 등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이다. 비단 경남도만이 아니라 학생 인권이나 청소년의회 같은 민감한 조례에는 찬반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조례제정을 밀어붙이는 방식보다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내는 노력부터 시작되어야 마땅한 일이다. 앞으로 이같은 민감한 조례 제정에는 무엇보다 절차의 합리성에 주목해 주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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