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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찾은 삼일회관. 입구를 넝쿨이 덮고 있고 건물 노후화가 심각한 등 보존 및 관리가 절실한 상황이다.
21일 찾은 삼일회관. 입구를 넝쿨이 덮고 있고 건물 노후화가 심각한 등 보존 및 관리가 절실한 상황이다.

올해 3월 1일은 '3·1 만세 운동'이 일어 난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1919년 3월 1일 독립에 대한 염원을 담은 만세 소리가 서울 탑골 공원에서 울려 퍼졌고, 3·1 만세 운동은 곧 전국 방방곡곡으로 번져나가 그해 5월까지 이어졌다. 울산에서도 4월 2일 언양을 시작으로 병영, 남창에서 독립 만세 시위가 펼쳐졌다.

# 토지는 국유지·건물은 사유재산
3·1 만세 운동 이후에도 울산에선 교육계 출신의 독립운동가들과 학생, 그리고 지역 청년회를 중심으로 항일독립운동이 계속 이어졌다.
이에 따라 자연스레 당시의 학교와 청년회관은 독립운동의 근거지로 사용됐다. 특히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한 시점에 울산 원도심에 지어진 '울산청년회관'은 지역 항일운동의 산실이었다.

울산청년회관은 현재 울산 중구 성마을길3에 위치한 '삼일회관'의 전신이다. 1920년 2월 창립된 울산청년회 관련인사들과 유지들의 자발적 기부를 통해 1921년 11월 건립됐다. 이후 울산청년회와 울산청년연맹의 각종 강연회·강습회·토론회 등 계몽활동에 활용됐으며, 노동야학 등 교육장으로도 사용됐다.

1929년 6월 기존의 청년단체가 울산청년동맹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나서도 각종 창립대회 및 강연장·강습회·토론장으로 활용되면서 지역 사회운동을 이끌었다.

특히 1928년 3월에는 일제의 훼방에도 불구하고 울산의 여러 사회단체의 중심인물들이 힘을 모은 끝에 항일단체인 신간회 울산지회가 이곳에서 설립되기도 했다. 1930년 10월 근우회 울산지회가 설립될 때에도 창립대회가 울산청년회관에서 개최됐다. 이후 울산청년회관은 3·1 만세 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시민들의 성금으로 개·보축을 거친 뒤 1971년 3월 1일 삼일회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 재개발지역에 위치 사라질 위기
이처럼 삼일회관은 과거 일제시기 울산지역의 민족운동, 사회운동, 문화운동의 터로써 울산의 대표 항일운동사적지로 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삼일회관은 너무나 초라한 취급을 받고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현재 삼일회관은 입구만 보더라도 '삼일회관'이라고 쓰여진 글자가 지워지다 못해 넝쿨이 덮고 있는 등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건물 외관은 한눈에도 노후화가 심각하다. 그 역사성에 걸맞지 않는 보존 상태임에도 지자체와 보훈처 차원의 손길은 닿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토지는 기획재정부가 관리하는 국유지지만, 건물이 사유재산으로 분류돼 있어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탓이다. 보훈처 차원의 관리가 이뤄지기 위해선 건물 소유주가 직접 현충시설 지정을 신청해야하는데, 이 경우 개인재산의 희생이 강요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실현이 쉽지 않다.

이에 지자체 차원에서 삼일회관의 보존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현재 삼일회관은 b-04 재개발지역에 속해있어 관리 없이 계속 방치된다면 그대로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우려도 크기 때문이다.

최근 울산시와 교육청 등 곳곳에서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진행 중인 만큼 지금이 삼일회관 보존방안을 강구할 적기라고도 볼 수 있다.

신춘희 울산이야기연구소장은 "삼일회관의 전신인 울산청년회관은 울산지역 정신문화의 발원지라고도 볼 수 있음에도, 세월이 갈수록 잊혀져만 가는 게 안타깝다"며 "지자체 차원에서 의지를 갖고 이를 보존·관리해 나갈 필요가 있을 만큼 역사성과 상징성을 갖춘 근대문화유적이란 것을 시민분들도 아셨으면 한다"고 전했다.  조홍래기자 usj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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