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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희

나는 금을 넘어 태어났다. 침 바른 문종이의 음산한 밤을, 육신의 금을 넘어서 아이가 되었다. 첫 울음이 사립문을 넘칠 무렵 아버지는 *긍굴을 치고 실에다 빨간 고추를 걸었다. 아마 누나가 태어날 무렵에는 솔잎을 걸었으리라. 부정의 금, 더 넓은 금을 향해 일어서고 걸었다.

볏짚냄새 풍기며 한글을 모르는 아이로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나무책상에는 이미 연필로, 칼로 반을 갈라 금을 그어 놓았다. 금 안은 완벽한 나의 영토, 넘는 것은 모두 나의 것이었다. '삼팔선도 이런 금일까' 의문부호를 플라타너스 나무에 걸어놓고 운동장에서 땅따먹기 놀이를 하며 하루 종일 금을 긋고 지웠다. 금은 내 몸에 붙어 다녔다. 만나는 사람마다 금을 그었다. 금 안에서 보고 금 바깥은 잘랐다. 때로는 사람의 심장을 찌르고 목을 치며 다리를 토막냈다. 그림자 하나도 허용하지 못하는 세상의 문, 힘으로 자르지 못하는 건 머리로 자르고, 머리로 자르지 못하는 건 힘으로 나의 금에 따라 잘랐다.

그러면서도 내 양심의 금을 먼저 넘었다. 내 눈은 카멜레온의 눈, 금이 있는 곳은 집적된 성지, 마음속에는 또 금이 생겼다. 기억의 곳간에 삽입된 논리가 어느새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내 영혼의 일부를 압축시킨 컴퓨터와 휴대폰 자판에 오타를 막는 금, 위와 아래, 옆과 옆으로 그어놓은 세상의 금, 금이 없는 게임은 없다. 우리는 금 밖에서 전화를 걸어 금 밖에서 만날 것이다. 갈라진 마음의 금 안으로 비가 새어 들어온다. 모든 것은 금에서 무너진다. 이런 금간 놈의 세상.

*긍굴 : 금줄의 울산지방 방언으로 아이가 태어나면 대문에 거는 줄.

△이광희 시인: 1986 노동해방문학, 2017 월간 모던포엠 시 부문 등단, 세계모던포엠작가회  회원, 민족문학작가회의 정회원, 울산 시인들의 회장, 시와 달빛 문학회 회장, 저서 『이광희의 아름다운 유혹』, 공저 『조국의 푸른 꽃넋이여』 등 다수.
 

박진한 시인
박진한 시인

누구나 그날 가득한 향수가 있다. 따뜻한 어머니 품속이 있다. 들꽃 길 걷던 그날이 있다. 오늘은 마치 자신의 이야기 같은 신기한 산문시 한 편을 소개한다.
삶은 참 신기하다. 개개인의 삶을 들어다 보면 가로 세로 줄을 그어 칸을 만들어 놓고 숫자를 채워가는 게임, 즉 마방진 같은 삶이다. 이 詩 속엔 태어나서부터 칸칸 채워가며 'O'를 그려 넣지 못하고 'X'가 많은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아찔함을 느낀다. 시인은 일찍이 이것을 알았나보다. 그 시절엔 금을 그어놓고 돌 밀어 넣기 놀이도, 공기놀이로 땅따먹기 놀이도 또 고무 줄 놀이도 결국 경계의 금이었다. 또 초등학교시절엔 플라타너스 나무는 큰 꿈이었다. 껍질 손바닥처럼 떨어지는 듯 나이를 먹고 희망을 쌓는 것이었다. 
오늘에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린이들에게도 마방진을 그려놓고 성장과 삶을 칸에다 채워가는 로봇인생이 심화되고 있다. 부모들이 이젠 칸을 그려놓고 채워 넣으라고 강조하고 있다. 스스로 채워가는 마방진을 그려보라고 권유하는 시인의 금이다. 독자들이여 금을 긋고 칸칸 생을 채워봅시다.  박진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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