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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없어도 남에게 베풀 수 있는 무재칠시(無財七施) 중 첫 번째가 화안시(和顔施)라는 석가의 가르침이 있다. 얼굴에 화색을 띠고 부드럽게 웃어 주는 것, 즉 환한 얼굴로 남을 대하는 것을 말한다. 행복한 미소, 이 얼마나 아름다운 단어인가? 나는 평소 이 가르침을 소중히 여기며 실천하려 애쓴다. 오늘도 이웃에게, 직장 동료에게 또는 마주치는 모든 이에게 화안시를 보내며 하루를 시작한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는 병설유치원이 있다. 공립이라 학비도 저렴하고 안전한 급식 제공은 물론이고 다음해 1학년 입학시 쉽게 적응할 수 있는 이점이 있어서 학부모들은 어떻게든 사립유치원보다 이곳에 보내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해마다 원서접수 때가 되면 정원 초과로 인한 치열한 경쟁은 흡사 대입을 방불케 한다.

아침 등굣길이면 할머니, 엄마, 아빠 손을 잡은 원아들의 재잘거림으로 교문은 생동감이 넘친다. 특히 이제 막 애기티를 벗은 5세 원아의 깜찍한 모습에는 한참 눈길이 머문다. 나는 아이와 함께 등교하는 학부모 한분 한분께 화안시를 건넨다. 웃음 띤 얼굴로 답례를 하는 그들에게서 하루의 에너지를 얻는다. 하지만 몇몇 분은 은근슬쩍 외면해 오히려 머쓱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다지 친분이 있지 않은 상대의 친절에 익숙하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

지난 겨울방학을 이용해서 유럽여행을 했었다. 활기차게 거리를 오가며 지구 반대 편 낯선 이방인에게도 자연스런 미소로 인사를 건네는 현지인들에게서 잠시 여행의 피로를 잊을 수 있었지만 우리 국민들의 경직된 모습이 대비가 되면서 답답하고 안타까운 심정을 지울 수 없었다. 유교사상과 선비문화에 젖은 오랜 전통이 낳은 민족성 때문일까.

불과 몇 백 년의 역사로 선진국 대열에 서 세계를 움직이는 그들 속에서 반만년을 자랑하는 우리 역사는 무색하다. 미소의 힘이라면 지나친 억측일까? 여행지 이동 중간 중간 버스 안에서 가이드는 세계 속의 한국을 역설하며 우리 일행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려 했다. 적어도 OECD 회원국이니, 1인당 GNP가 3만 불이라고 하는 경제대국이라고 할 때까지는 그랬다. 그만 꼴찌에서 몇 번째라는 행복지수를 언급하면서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잠깐 침묵이 흐르고 그도 우리도 함께 풀어야 할 공통의 과제라는 것을 인식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 행복지수는 무엇으로 가늠하나. 채워지지 않은 욕구와 잘못 길들여진 습관, 학벌·외모 지상주의와 힘든 일은 하지 않고 노력 없이 단기간 성공하려는 요행에서 비롯되는 원인이 있다. 그로 인해 마음의 여유와 웃음을 잃어 가는 현실에 그저 망연자실할 뿐이다. 그나마 <웃음 연구소>와 <밝은 미소 운동 본부>가 생겨나고 '웃음치료사'란 직업이 뜨고 있는 건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학교, 직장, 연수원, 병원 등 곳곳에서 그들을 초빙해서 강좌를 열고 인간성 회복과 밝은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다.

요즘 학교 현장도 예전 같지 않다. 서로가 서로를 이기고 극복해야 할 경쟁사회 속에서 교사와 학생간의 신뢰는 갈수록 무너지고 있다. 학교 폭력이 난무하고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학생이 있는 가하면 교권은 추락 할대로 추락해 지친 교사들의 명예퇴직도 해마다 늘고 있다. 서로를 배려하고 진심어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과 친절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긍정의 기운은 어떤 역경도 이겨낼 수 있다고 했다. 교육청에서는 친절서비스 향상의 일환으로 분기별로 전체 교직원 친절교육과 전화 친절도 조사를 실시해서 등급을 매기고 그 결과를 일부분 성과급 지급에 반영하고 있다. 특히 외부 민원인에게 부드럽고 예의 바른 응대는 물론이고 교사가 학생에게 먼저 인사하는 분위기도 만들어가고 있다. 다양한 제도장치를 마련해 서로를 신뢰하고 온정의 웃음꽃이 피는 학교 현장이 됐으면 좋겠다. 행복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손쉬운 봉사 화안시(和顔施)를. 바로 여기, 나부터 실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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