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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안사위(居安思危)라는 말이 있다. 편안할 때에도 항상 위기를 생각하며 대비하라는 뜻이다. 지난해 GM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호실적을 거뒀음에도 4차 산업혁명시대 생존을 위한 적극적인 인원 감축을 단행하며 몸집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불필요한 부분은 과감히 쳐내고 경쟁력 있는 부문에 집중하며 미래를 준비한다는 전략이다.

자율주행, 인공지능, 커넥티드, 모빌리티, 차량공유 등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자동차산업의 변화는 구조적인 대변혁을 예고하고 있다. 기존 전통적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구글, 아마존, 우버 등 전혀 다른 업종의 도전을 받고 있다.

자동차산업 전문가들은 앞으로 5년 후 세계 자동차 기업의 80%가 사라진다는 전망을 내놨다. 또 미래의 자동차가 배터리와 모터로 작동하는 전기차처럼 엔진과 변속기가 사라지고, 자율주행을 위한 각종 센서와 무선으로 연결돼 실시간 통신을 주고받는 커넥티드 모빌리티 부품들로 채워지는 등 인공지능을 갖춘 전자기기에 가깝게 진화하는 모습을 띠게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교통수단의 개념이 점차 소유에서 공유로 바뀌면서 완성차 산업 수요도 줄어들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 공정이 감소하고 이에 따른 고용 문제가 필연적으로 수반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 노사도 이같은 자동차산업 트랜드 변화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고용 충격에 대비하기 위한 본격적인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노사는 지난 7일 특별고용안정위원회 본회의를 열고 전기차 등 친환경차의 확산과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제조공정의 인원 감소 문제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이에 앞서 현대차 노사는 지난해 임금교섭에서 미래차 확산과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고용안정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고용안정위원회를 운영키로 합의한 바 있다. 지난 1월에는 중장기 방향성에 대한 객관적 의견 청취를 위해 외부 전문가 5명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객관적 연구결과를 토대로 합리적 노사 상생방안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그동안 4차 산업혁명시대 인원 감소 문제에 대한 대책 마련을 회사에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미래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가 근로자들의 고용에 미치는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반영된 것으로 노조는 이번 협의에 매우 진지한 자세로 임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수년째 수익성 악화로 고전하고 있는 현대차는 국내공장 구조조정을 하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현재의 고용을 어떻게든 유지하려는 현대차의 의지는 대규모 조선업 구조조정을 겪으며 유례없는 침체에 빠진 울산으로서는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편으론 선제적인 인원 감축을 단행하며 미래 생존을 위한 체질개선에 나선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현대차가 언제까지 버텨낼 수 있을지 걱정도 되는 상황이다. 현대차 국내공장 경쟁력이 동종업계 최하위 수준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관건은 현대차 노사가 이번 특별고용안정위 협의에서 현재의 고용을 유지하면서도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효율적인 인력 운영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이 문제는 굉장히 어려운 과제다. 실제로 이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노조의 전향적인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노조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들이닥칠 고용 쓰나미를 슬기롭게 피해 나가려면 현실을 직시하고 보다 열린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논의에 임해야 한다. 회사 입장에서 구조조정을 해도 모자랄 판에 노조가 정규직 충원을 요구한다거나 지금처럼 배치전환조차 자유롭지 못한 고용경직성을 유연하게 풀지 않는다면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은 상황에서 해법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번 특별고용안정위에서 적절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노사갈등이 계속 이어진다면 구조조정의 부메랑은 어떤 방식으로든 돌아오게 되어 있다.

지금 자동차업계의 상황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전방위적인 위기 상황이다. 최근 자동차업계는 제너럴모터스(GM)의 경우 지난해 3분기 32억 달러(약 3조 6,000억 원)의 영업이익에도 불구하고 북미 사업장 5곳과 해외 2곳의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1만 4,700명의 인력을 감축하는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또 폭스바겐, 포드, 혼다 등도 시장이 전기차와 자율주행차로 빠르게 전환되고 이에 대한 미래 대비를 이유로 공장 폐쇄, 인력감축 등에 나서 대규모 실직사태가 예견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은 "전동화와 4차 산업혁명이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전개되면서 미래 생존 경쟁력 확보 여부에 따라 자동차산업 주도권이 좌우될 것"이라며 "현대차 노사가 고용문제를 공동 모색하려는 노력은 직원 고용안정과 회사 생존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하는 중대한 계기가 될 것이다"고 평가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특별고용안정위 협의에 노조의 그 어떤 명분싸움과 정치적 논리 등 복잡한 셈법이 개입되어선 안 된다. 오로지 '회사의 미래생존과 근로자 고용안정' 이 두 가지만 놓고 열린 대화를 통해 상생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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