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 전 그날은 모두가 하나였다
백 년 전 그날은 모두가 하나였다
  • 울산신문
  • 승인 2019.03.11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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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두 시인·소설가

가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만약 울산에 십리대숲이 없었다면 울산은 얼마나 삭막한 도시였을까 하는 생각이다. 마침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치르고 난 뒤끝이라 여느 때와는 다른 마음이 생겨나면서 "일본사람도 일본사람 나름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으로 말하면 신체상 허파역할을 해주고 시민들의 보물이면서 생태환경도시의 상징인 십리대숲은 일제강점기만 해도 지금의 길이와 넓이가 아닌 보통의 숲이었다. 이 같은 숲을 이어서 대나무를 심고 넓은 숲을 조성해 남겨준 사람이 있다. 일제강점기 울산에서 살았던 오까야마란 일본인이다. 그에게 어떠한 평가를 내려도 나는 울산으로서는 고마운 사람이라 여긴다. 

또한 남구 대현동 일대에 과수원을 처음 조성해 물려준 일본인도 있었다. 창방(創方)이란 일본인이 그 사람이다. 그는 대현동 일대가 일조량 등 과수원으로 적지임을 알리고 직접 뛰어들어 과수원을 경영하다가 해방이 되면서 팔거나 이양해주고 돌아간 사람이지만 그를 유독 기억하는 것은 울산을 무척 사랑했다는 것이다. 해방이 되자 경황없이 떠나가면서 울산의 토종 복숭아를 가져가 신품종으로 개량하고는 다시 울산으로 와서 보급하고, 삼남면에서 복숭아 통조림공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한국원예사에 기록되는 업적으로 봐서 역시 고마운 일본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거금을 선뜻 던지면서 사회사업에 공헌한 여성도 있었다, '구와바라다끼'라 부른 일본여성은 일제강점기 남편 구와바라가 울산경찰서장으로 부임할 때 남편을 따라 울산으로 오게 되었다. 그는 언양 일대의 야산을 많이 사들이고는 그곳에 양잠용 뽕나무를 대량으로 심어 떼돈을 벌었던 여성이다. 그렇게 많은 돈을 수중에 넣게 된 그녀는 언양농림전수학교가 삼남면 가천으로 옮겨갈 때와 언양중학교를 설립할 때 거금을 내놓아 주위를 놀라게 했고 지금의 중구 중앙동주민센터자리에 읍사무소를 지으려 할 때도 해당 부지를 기증함으로써 칭송을 받았던 사람이다. 또한 교양을 갖춘 여성으로 그 시절 주위 사람들에게 다도를 가르치고 전승함으로써 울산의 차문화에 이바지한 여성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지역사회에 도움을 끼친 다끼와 같은 사람들이 더 많다고 하더라도 일본이 우리에게 가한 역사의 죄를 지울 수 있으랴. 이 땅에서 사회적사업에 공헌을 했다 하더라도 내놓은 거금이 그의 고국에서 가져온 돈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남편의 지위를 이용해 무차별로 착취해서 남긴 돈이거나 마구잡이로 탈취한 재산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삼일독립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는 우리는 그래서 그때를 마냥 잊지 못하는 마음일 수밖에 없다. 우리의 현실이 너무 한심하고 비참하기 때문이다.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한산섬의 수루에서 애간장을 끓이며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끌어 나라를 구해낸 이순신 장군, 그 충무공이 지켜보는 광화문광장에서 보수라 일컫는 단체들이 따로 삼일절 기념집회를 가졌다.

나라를 사랑한다는 이들 그 충정은 이해하지만 적어도 삼일절만큼은 모두가 하나 되어 만세를 부를 수 없었을까? 모두가 하나 되어 아직도 진심 어린 사죄를 하지 않는 허울 좋은 우방국을 향하여 한목소리를 낼 수는 없었을까?

100년 전의 3·1만세운동은 따로가 아닌 모두가 한 목소리였다. 국토의 방방곡곡이 전부 하나였다. 울산도 그랬다. 어느 곳 하나 만세소리가 안 들리는 곳이 없었다. 이렇게 해서 쟁취한 자유와 평화를 왜 더욱 다듬어 가꾸지 못하는 것일까.

나라를 지키고 국가의 수문장으로 높은 기상을 떨치던 예비역 장성들이 오죽하면 맨손으로 길거리에 섰을까? 하는 무겁고 착잡한 마음이다. 그러나, 어느 정당이 부르짖는 구호는 허무함을 느낄 정도다. 아직도 혼자서 삐쳐 버리면 그만이고 아직도 수인번호를 모르면 의리 없는 배신자가 되고 마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 답답하기만 하고 부끄럽기만 하다.

창틀은 떨어져 나가고 담이 허물어진 모습을 풍창파벽이라한다. 정말 풍창파벽이던 나라를 바로 잡기를 바라는 국민들이 이만큼 바로 세우고 이제 백 년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다시 백 년의 미래를 위하여 뛰어가고 있다.

대통령을 "제깐게!!"하는 마당에 별 볼 일 없는 네깐게!!랄지 모르지만 하노이 북미회담은 우리에게 눈을 크게 뜨고 살펴야 한다는 경고였다. 아리송한 북한의 핵을 더 들여다보라는 경보음이었다. 현명한 농부는 설익은 과일을 따지 않는다. 부디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세계를 대표하는 현명한 농부이기를 바랄뿐이다.

그리고, 모디 인도 총리의 방한은 나에게 또 다른 주파수를 살려내 주었다. 그 주파수는 인도의 타고르였다. 시인 타고르는 일찍이 "아시아의 등불이 된 코리아! 그 등불이 다시 켜지는 날, 아시아의 빛이 되리라"라고 노래했다.

그렇다. 아시아의 시대가 오고 있다. 우리 민족이 웅비할 아시아의 시대!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각오가 단단하게 달라져야 한다. 비록, 각기 다른 모습으로 주의, 사상을 달리하고 살더라도 나라의 안보에는 백 년 전의 삼일절에 모두가 하나였듯이 다시 그때의 우리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하늘이 이르는 하늘의 소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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