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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꽃 문장
 

유재영

어둠을 배경으로 환히 밝힌 돋을새김

한 뜸 한 뜸 옮겨 심은 스무 살 푸른 봄밤

두 손을 가만히 모아 지는 꽃을 받습니다

지난날을 되감으면 우리 사이 봄이 올까

차마 못한 그 한 마디 오므린 저 봉오리

오늘 밤 가지마다에 날개 접고 앉습니다

해마다 다시 피는 내 마음의 목련꽃을

손짓해 함께 볼 이 오실까 기다리다

오십 년 세워 둔 생각 물빛으로 젖습니다

△유재영 시인: 1973년 등단, 시집 『한 방울의 피』 『지상의 중심 되어』 『고욤꽃 떨어지는 소리』 『햇빛 시간』 등, 노산시조문학상 가람시조문학상 편운문학상 중앙시조대상 등.
 

이서원 시인
이서원 시인

우리 집 담장 아래에는 작년에 심어둔 작은 목련나무 한 그루가 있다. 그늘이 일찍 드는 집이라 조금이라도 마당을 환하게 하고 싶어서 어린 묘목을 사 심었던 것이다. 그러나 작년엔 이미 봄을 넘긴 계절이라 살릴 수 있을까 마음을 졸이며 혼자 어린애 마냥 이 봄을 기다렸다. 잎도 없이 죽은 듯이 일 년을 보내더니 맙소사 오늘 하얀 꽃 몇 송이를 가지 끝에 올려놓았다. 고요하고 깔밋하고 매끄럽고 보드라운 저 우주의 한 쪽 자태! 보란 듯이 돋을새김으로 피어난 순백의 열정을 앞에 두고 오래도록 서성이다 흥분하여 감사의 목례라도 올리고 싶었다. 갑자기 작은 마당이 대궐 뜰처럼 풍성하고 아름답다.
아직은 이른 봄날이지만 작은 추위쯤은 "나 거뜬히 이길 수 있어요" 라며 자기의 모습을 수줍게 피워낸 갸륵한 정성이 숭고하다. 스무 살 푸른 봄밤이 아련하게 떠올려진다. 지난날을 얼레처럼 되감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목련꽃과도 같이 눈부신 그런 스무 살 봄밤의 여인 앞에서 말 못했던 수줍은 고백이라도 다시 할 수 있을까 몰라. 오므린 봉오리처럼 입안에만 맴돌았던 작은 순정의 '사랑'이라는 말 한마디 못하고 50년의 세월 다 보내고 말았으니 어쩌나. 해마다 목련꽃이 피었지만 이 꽃이 그날의 꽃이 아니듯 시간도 세월도 까무룩 흘러 목련처럼 아득하다. 몇 날이 지나고 금방 또 꽃잎이 질 때 가만히 두 손을 모아 저 꽃을 받으며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내 손 위에 그 사람 손을 살포시 포개며 저 꽃 앞에 서 볼 수만 있다면 좋겠다. 봄은 첫사랑마냥 설레고 수줍음이다. 다시 못 올 아련함 앞에서 마냥 두런거리다 돌아서는 아픔이다. 마음 가득히 젖어서 울컥 쏟는 울음이다.
 이서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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