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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3주가 지나가는데도 빨갱이 논란은 그칠줄 모른다. 발단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일 3·1절 기념사에서 "일제(日帝)는 독립군을 '비적(匪賊)'으로, 독립운동가를 '사상범'으로 몰아 탄압했고 여기서 '빨갱이'라는 말도 생겨났다"며 "빨갱이는 진짜 공산주의자만이 아니라 민족주의자에서 아나키스트까지 모든 독립운동가를 낙인 찍는 말이었다"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좌우의 적대, 이념의 낙인은 일제가 민족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사용한 수단이었고 해방 후에도 친일청산을 가로막는 도구가 됐다"고 소개했다. 적폐청산의 마침표는 빨갱이 청산이라는 확고한 신념으로 읽혔다. 대통령의 발언이 나가자 국론이 갈렸다. 여당은 당연히 문 대통령의 확고한 역사의식에 기반한 적폐청산 주장이라고 반겼지만 야당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빨갱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함의가 여론의 광장에 본격적으로 오른 셈이다. 여기서 빨갱이라는 단어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자. 빨갱이가 단어로 사용된 그 뿌리는 여러 설이 있다. 그 하나가 빨치산 기원설이다. 빨치산의 경우 러시아어 partizan(파르티잔)을 일본식으로 적은 일본어 'パルチザン(빠루치잔)'이 일본어 음운 변화를 거치며 빨치산이 됐고 이를 차용해 사용한 말이 빨갱이가 됐다는 설이다.

또 다른 설은 색깔 기원설이다. 이는 공산주의 추종자들이 빨간색 완장을 차고 활동한 것에서 시작됐다.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을 때 공산주의가 붉은 색을 색깔로 정한 것이 빨간 완장의 시작이다. 러시아 민속에서 붉은 색은 좋은 의미의 색이다. 러시아인에게 붉은 색은 긍정의 기운이 가득한 색이며 신성한 색이자 민중을 의미하는 색이었다.

러시아 크렘린의 붉은 광장 역시 공산주의와 무관하게 그 이전부터 붉은 광장이라 불린 것도 그 이유다. 이 때문에 공산주의도 자신의 상징으로 붉은 색을 택했고 바로 그 색깔 때문에 빨갱이는 곧 공산주의자로 통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여러 가설을 종합해 볼 때 빨갱이 어원에 대해 일치된 견해는 없다. 다만 독립운동이나 정권 탈취를 위해 싸우는 비정규군을 뜻하는 파르티잔(Partisan)이 빨치산으로 변했고 이 발음이 다시 빨갱이로 변형됐다는 설이 보편적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해방 전후 좌우익이 맞짱을 뜰 무렵 빨갱이의 의미는 어땠을까. 당시 자료를 보면 빨갱이는 우리 사회에서 부정적 의미는 아니었다. 소설가 채만식은 1948년 10월 창비사에 쓴 '도야지(돼지)'라는 글에서 "1940년대의 남부 조선에서는 양심적이요, 애국적인 사람들을 통틀어 빨갱이라고 불렀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승만 정권이 반동분자를 처단하는 목적으로 '빨갱이 프레임'은 만든 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빨갱이의 의미는 지금처럼 극악무도하고 파렴치한 의미로 변했다. 여기에 빨갱이를 극도로 혐오하게 만든 주인공은 박정희였다. 자신이 한 때 빨갱이로 몰렸다는 사실 때문에 박정희는 빨갱이라는 말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고 역작용으로 빨갱이를 분노의 대상, 척결 대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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