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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를 녹이는 봄비가 소리 없이 왔을 때 즈음, 남동생이 해병대에 입대해 서해 강화도로 자대 배치를 받았다. 3년 전 이맘때 훈련소로 들어가는 동생 뒷모습을 바라본 이후 얼마간, 나를 둘러싸고 있던 공기의 느낌은 지금의 따뜻한 봄기운과는 사뭇 달랐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성인 남자라면 의무적으로 가야하는 군대. 그 남자가 한없이 어리게만 느껴졌던 내 동생이라고 하루하루가 걱정의 연속인 날들이었다. 21개월 동안 자랑스럽게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돌아왔지만 뉴스에서 군대와 관련된 비극적인 사건·사고가 많이 나왔던 탓이었을까, 그 기간 동안 TV에서 군대의 '군'자만 나와도 '무슨 사건일까, 어떤 좋지 않은 소식일까?' 전전긍긍하던 게 엊그제 같다.

동생이 서해에서 군복무 중일 당시, 한창 군의 소식에 관심이 많을 때라 서해 수호의 날이 법정기념일로 지정됐다는 소식을 바로 알게 됐다. 그러나 서해 수호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4회째 기념식을 하고 있는 지금,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이 법정기념일이 낯설 것이라 생각된다. 아직은 낯선 이 기념일의 이름과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한다.

'서해'는 수도와 접하고 있는 해역으로 서해 5도를 비롯해 역사적으로,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이다. 하지만 한반도의 모든 영토는 수호의 대상으로서 우열을 가릴 수 없는바, 유독 '서해'를 수호하는 날로 지정한 까닭은 무엇일까. 서해 수호의 날은 매년 3월 넷째 주 금요일로 지정돼 있다. 그렇다면 왜 매년 3월 넷째 주여야 했을까? 어쩌면 서해 수호라는 단어보다 서해를 지키는 용사들이 타고 있던 배 이름이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1987년에 건조돼 1999년 6월 15일 제1차 연평해전에도 참가했던 역전의 초계함 천안함이 2010년 3월 26일 21시 22분경 북한 잠수함의 어뢰공격으로 침몰됐던 날, 이 날이 3월의 넷째 주 금요일이었다. 북한의 불법 기습공격으로 이창기 준위를 비롯한 46명의 젊은 용사들이 희생됐으며, 구조과정에서 한주호 준위가 순직했다. 6·25전쟁 이후 가장 많은 수의 희생자가 나온 너무나도 참담한 사건이다.

천안함 피격사건뿐만 아니라, 서해안에서 발생한 두 차례에 걸친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은 우리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이처럼 서해안은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고귀한 생명들이 지켜낸 영역이다. 이에 서해 수호의 날은 국토를 수호하다 서해에 잠든 호국의 별들을 기억하고 함께 추모하자는 의미에서 법정기념일이 된 것이다.

내 동생, 내 아들이 우리의 평화로운 일상을 지키기 위해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동안 우리는 매일같이 그를 생각했고 나조차도 그러했다. 우리가 호국의 영웅이라고 부르는 그들은 내 아들, 내 동생이 아니라고 생각될 수도 있기에 매일같이 그들을 상기하고 추모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비극적인 역사가 반복되는 일은 두 번 다시는 없어야 한다. 어쩌면 내 아들이, 내 친구의 동생도 크고 작은 교전을 통해 최후의 순간까지 사력을 다해 싸우는 희생을 해야 할지도 모르기에 따뜻한 봄기운과 함께 종전이라는 단어가 화두가 되고 있는 요즘, 3월 넷째 주 금요일 '서해 수호의 날' 하루만은 그들을 떠올리며 애도하고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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