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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 산하동 화암마을 해변 일대에는 '꽃 바위'라 불리는 '화암(花岩)'이 있다. 근처 정자항 남쪽 판지마을 앞바다에는 이색적인 '미역바위'도 존재한다.
이는 울산시 기념물 제42호로 지정된 '강동 화암 주상절리'와 기념물 제38호 '곽암(藿巖)'으로, 울산 정자바닷가 일대에서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자연유산이다.

 

 

울산시 기념물 제42호 강동 화암 주상절리.
울산시 기념물 제42호 강동 화암 주상절리.

 

# 바위횡단면이 꽃무늬 모양이라 '화암'
'강동 화암 주상절리'는 북구 산하동 952-1에 위치하고 있다. 주상절리는 분출화산암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으로, 주로 현무암질 용암류에서 나타나는 기둥모양의 수직절리로 용암이 화구로부터 흘러나와 급격히 식으면서 발생하는 수축작용의 결과로 형성된다. 주상절리는 수직으로 발달한 절리들에 의해 다각형(삼각형내지 육각형)의 단면을 갖는 기둥모양들이 서로 연결된 형태를 나타낸다.
'강동 화암 주상절리'는 신생대 제3기의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주상절리와는 달리 다양한 형태와 방향으로 발달하고 있다. 대부분의 주상절리들이 수직으로 발달하는 반면 강동 화암 주상절리는 절리면이 지표면에 수평, 수직, 경사진 형태 등 다양한 방향으로 발달돼 있다.
특히 지표면과 평행하거나 비스듬하게 경사진 수평 주상절리의 발달이 우세하다. 주상절리에서 관찰되는 단면 모양은 사각형에서부터 칠각형까지 다양한 형태를 보인다.
강동 화암 주상절리의 횡단면이 꽃무늬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 마을의 이름인 '화암(花岩)'은 여기에서 유래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기념물 제38호 곽암 근경.
기념물 제38호 곽암 근경.

# 소유권 분쟁 있었던 '미역 바위'
미역바위라는 뜻의 '곽암'은 북구 강동동 판지마을 바다 속에 있는 자연암으로, '양반돌' '박윤웅(朴允雄)돌'으로 불리기도 한다.
1937년에 간행된 '흥려승람(興麗勝覽)'에 의하면 박윤웅은 나말여초 당시 왕건이 고려를 세우고 지방의 호족세력을 정비할 때 협조했다. 그로 인해 울산은 흥려부로 승격되고, 박윤웅은 그 공훈을 인정받아 정5품 흥려백에 봉해졌다고 한다. '흥려'라는 말은 고려(高麗)를 흥성(興盛)하게 했다는 뜻이다.
'학성지' '울산박씨세보'등에 의하면 그때 박윤웅이 동진(東津)의 땅을 하사받고, 유포에 있는 미역바위 12구를 하사 받아 미역채취권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동진은 현재 울산 강동·농소를 말한다.
그 후 조선 영조 때 어사 박문수가 주민들의 호소를 듣고 울산박씨 문중 후손이 대대로 소유했던 12구의 바위를 국가에 환수시켰다. 환수 후 3년 내내 미역 흉작이 들자 그 중 1구를 다시 박씨 문중에게 주어 일제 강점기까지 소유권이 이어졌다고 한다.
'흥려승람'권 1, 인물조에는 어사 박문수가 '위대한 공은 영원히 썩지 않는다'는 뜻으로 바위 면에 '윤웅(允雄)' 두 글자를 새겼다고 하나 지금은 확인할 수 없다.
조선 후기의 미역 등의 생산과 관계가 있는 곳으로 조선 후기의 경제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며, 인간의 지혜와 노력이 가해진 문화재와 구별되는 자연물로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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