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래공수거와 두 전 대통령
공수래공수거와 두 전 대통령
  • 울산신문
  • 승인 2019.03.25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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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두 시인·소설가

집에서 50미터도 안되는 거리에 소공원이 있다. 햇볕이 화사하던 날 모처럼 나가 공원의 원두막에 앉아 있는데 길 가던 스님 한 분이 말없이 걸어와서는 옆자리에 앉는다. 걸망을 메고 목탁을 들었으니 분명 스님이었다. "처사님은 이 동네에 사십니까?" "예. 스님은 어느 절에?" "여기서 좀 떨어진 곳에서 토굴을 짓고 삽니다만 도량 하나 세워보려고 이렇게 나와 다니고 있습니다. 불심이 대단하고 훌륭한 양반을 만나기가 힘듭니다. 그렇지요?" 

그는 구면인 듯 가까운 사람마냥 온갖 말을 늘어놓는다. "저 목련 나무를 보세요. 곧 꽃을 피울 겁니다. 관세음보살… 그 참! 박근혜 전두환 두 전 대통령이 안타깝습니다" 느닷없는 그 말끝에 나는 피식 웃어 보였다. 그랬더니 그는 점점 앞서 말을 꺼내는 것이었다. "인간은 본래 공수래공수거.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데 무엇 때문에 욕심을 채우려 하고 괸스런 고집으로 미운 사람! 좋은 사람하고 내 편! 네 편! 하며 갈라놓는가 말이지요!" "스님! 그만하시고 어서 가서 절짓는 일에나 열정을 바치시지요" 그 말 한마디를 했더니 그는 연신 관세음보살을 중얼거리면서 일어서 가버렸다. 

그가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투덜거릴 수밖에 없었다. 왜 하필이면 두 대통령이고 어째서 공수래공수거인가 하면서 그를 잡고 꾸짖어놓을 걸 그랬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그가 지껄이고 간 말들은 최근의 나를 심란스럽게 하거나 짜증 나게 하는 말들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스님네가 아니라도 흔히 인간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자주 인용한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을 되뇌이긴해도 그렇지않다고 말하면서 부정해버린다. 허무감을 한순간에 몰고 오는 말을 굳이 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보다는 '인간은 미래를 쥐고 와서 과거를 지고 돌아간다'는 말로 바꿔쓰고 그렇게 생각을 굳혀온 것이 옳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때문에 세상에 올 때 쥐고 온 미래가 인간의 삶인 동시에 고스란히 역사가 되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과거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지 못할까 하는 안타까움이 두 전 대통령만 바라보면 생각나는 것을 어쩔 수 있으랴… 나는 지난 3월 12일 자 신문의 본란에 소공원에서 만났던 그 스님의 말에 앞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두고 회자된 민심을 단 한 줄도 안 되게 써넣은 적이 있었다. 그 글을 읽은 박의 열성 지지자 A 씨가 이른 아침에 항의 전화를 짜증 나게 걸어왔던 것이다. 그 정도의 글에도 당사자가 아니면서 과잉반응을 보이다니… 하면서 덮어버렸지만 별로 속은 좋지 않은 것 같았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사건의 훨씬 이전에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더라면'의 저서를 낸 적이 있다. 누가 부모를 가려서 날 사람이 있을까? 어쨌거나 그는 평범한 가정이 아닌 특별한 가정에서 잘 자랐고 격동의 시련 속에서 부모를 잃는 비운을 맞기도 했다. 또 그런 가운데서 역사의 중심에서 대통령이 되었으며 저질러서는 안 될 큰 실수를 보이고 만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지금도 영어의 몸이 되어있다. 잘한 일도 많겠지만 당장 그로 하여 국론을 가르게 하는 중심 인물이 되는 현실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나라를 위해서 모든 미웠던 사람, 자신을 배신했던 사람, 모두를 용서의 용광로에 태우며 품어주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진실로 진실로 말하노니 내 탓이오! 내 탓이오! 하는 모습, 그 자비로운 모습을 보이면서 속죄의 시간에 앉아있어 주었으면 한다. TV와 신문을 전혀 안 본다는 그가 국민의 흩어진 국론을 한 묶음으로 하길 바라는 평범한 사람들의 소리를 귀담아 들어주었으면 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라면 할 말이 더 많다. 그의 무례한 폭정이 법을 짓밟고 아픔에 빠뜨린 죄상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 나도 무지막지한 폭정의 희생자임을 증언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저주스럽기만 하던 그를 이미 용서한 지 오래다.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누가복음 6장 37절의 말씀을 머릿속으로 밀어 넣고 수난 이후 20년이 넘은 어느 날까지 내 안에 온당치 못하게 아니 법이 깡그리 까뭉개진 속에서 상처를 안겨준 그가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그때 내려놓는 마음을 성령께서 주셨던 것이다. 내가 오늘 이 글을 쓸 수 있게 한 은혜라고 생각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처음 광주로 가기 위해 자택을 나서 차에 오를 때 나는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사나이답게 떳떳하게 법정에서 용서를 비는 말을 할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이건 나뿐만이 아니라 광주시민과 많은 국민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 기대가 불과 몇 시간 만에 그만 여지없이 팽개쳐버렸다. 그는 아직도 자신이 이 나라를 통치하고 있는 대통령으로 착각하는 모양이었다. 아니 대통령이라도 할 수 없는 행동을 그는 꺼림 없이 해버리는 것이었다. 겨우 한다는 말이 왜 이래! 하는 호통이었다.

국민을 모독하는 이 광경도 모자라 법정에서는 꾸벅꾸벅 졸다가 돌아갔을 뿐이다. 나는 눈을 감는다. 그가 세상에 올 때 정권을 탈취하기 위해 많은 시민을 울리고 국민들 앞에 이런 모습을 보이라는 미래를 쥐고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부끄러운 과거를 지고 갈 그를 바라보면 참으로 슬프고 슬플 뿐이다. 참으로 슬픈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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