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눈물
  • 울산신문
  • 승인 2019.03.28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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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옥연 수필가

 

눈물은 슬플 때도,
기쁠 때도 흘리지만,
응어리진 무엇을 풀어내는데는
이만한 치료제가 없다

 

 

 

눈물과 망각은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다. 그 중에 특히 좋은 것은 망각이다. 사람에게 망각이 없다면 얼마나 짐스러울까. 기억을 놓지 못하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갖는 생각이다. 나는 기억력이 그다지 좋지 않다. 어머니를 볼 때면 기억하고 사는 것보다 잊고 사는 것이 더 많으니 다행이라 여겨질 때도 많다. 물론 잊는다고 잊고 싶은 것이 다 잊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기억할 일이라고 해서 다 기억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지나간 것은 조금씩 잊을 수 있어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일을 하다보면 턱없이 이기적인 사람이 있다. 상식 밖의 행동으로 충돌하게 되는 경우에는 답답할 정도다. 같은 수준으로 이해하고 대응할 수도 없으니 머리가 터질 지경이 되기도 한다. 가끔은 소리를 지르고 싶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다.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걸 알기에 참게 되지만 그것 또한 해결책은 아니다. 지난 가을과 겨울 사이에는 정말 힘든 일들이 많았다. 안 볼 수도 없는 이에게서 당치 않은 면을 발견한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아 해결해야 할 문제가 풀리지 않았다. 차라리 얼굴을 보지 말고 살았으면 하는 간절함도 있었다. 나의 간절함은 기도로도 먹히지 않는 듯하다. 아마도 내게 더 많은 인내를 키우기 위함이라 여겼다. 결국 소주 한 병을 들고 산으로 갔다. 누구를 방해하거나 어떤 방해도 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병째 들고 서너 모금을 들이켰다. 노래를 불렀다. 그러노라니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한없이 울었다. 내 안의 어디에 그렇게 많은 눈물이 있었을까, 울고 또 울어도 눈물은 계속 나왔다. 얼마를 울었을까. 가슴에 맺혔던 응어리가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분노했던 마음도 말랑말랑해지며 다소 안정이 되었다. 남을 원망하는 건 내가 더 고통스러운 일이다. 이기적으로 사는 것도 나로서는 쉽지 않다. 상대가 오히려 안쓰럽게 여겨진다. 관계개선에 안달복달하며 매달렸던 날들이 무의미하게 생각되었다.

무심하게 사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도 깨달았다. 눈물의 효과였다. 받아서 모으면 한 컵도 되지 않을 눈물이 가슴속의 응어리를 녹인 것이다. 눈물은 슬플 때도, 기쁠 때도 흘리지만, 그보다는 가슴속의 응어리를 쏟아낼 때 큰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언젠가 통곡하는 남편을 본 적이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연이어 병으로 잃은 뒤였다. 시부모님은 불치병으로 가족들을 오래 애타게 했다. 무의미한 생의 끈에 잡혀 있다는 생각이 들 즈음에는 부디 더는 고통 받지 않고 떠나기를 빈 적도 있었다. 어머니를 보내고 몇 달 뒤였다. 남편이 친구의 부친상에 조문을 하고 밤늦게 돌아왔다. 새우처럼 말아 들인 가슴에 어머니의 사진을 안은 채였다. 가슴 깊은 곳에 박혀있던 앙금들이 눈물에 섞여 나오는 것 같았다. 어느 누구의 위로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오래도록 꺽꺽거리며 우는 남편을 지켜보기만 했다. 부모에게 살갑지 못했던 아들이었던 것도 남편의 눈물 속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른으로 사는 것은 참 어렵다. 사람 노릇 하는 것도 그렇다. 맹목적인 감정표현을 할 수도 없다. 불쾌한 말이라고 번번이 대적하는 것도 잘하는 것 같지 않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자가 치료가 필요하다. 애주가는 술로 위로를 받고, 애연가는 담배 한 모금으로 풀 수 있다. 그러나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은 속으로 삼키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술의 힘을 빌려서라도 실컷 우는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명약이라 여겨진다. 응어리진 무엇을 풀어내는 데는 눈물만한 치료제가 없는 것 같다.

애써 참으며 살기보다 한 번씩은 스스로 물꼬를 터 주어야 한다. 감정이 휴식하고 응어리는 토해내며 스스로를 다독일 시간을 가져야 한다. 떨치고 싶은 기억에 제를 지내기 위해서는 제물로 소주 한 병이면 족하다. 스스로에 대한 연민이든, 상처를 준 이를 향한 미움이든 술 한 병에 섞어서 마시면 눈물이 쏟아질 것이다. 실컷 울고 나면 정화된 내가 보인다. 상대의 마음도 그러려니 여기고, 비열하다 싶은 행동에도 말 못할 서사가 숨어 있으리라 이해하게 된다. 다만 눈물이 필요한 날이 자주 있어서는 안 되겠다. 남은 다른 날들은 많이, 더 크게 웃을 일이다. 눈물보다야 웃음이 더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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