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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선 대송고 교사

3월이다. 학교에 있다 보니, 새 학기를 맞이하는 3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한 해가 시작되는 것이 실감이 난다. 개학을 맞이하며 두근대는 심정은 교사나 학생이나 비슷하리라. 새 학교에 출근할 첫날을 기다릴 때면 늘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몇 년 전 이맘때였다. 개학 직전의 긴장과 설렘으로 가득하던 어느 날 오후, 문자메시지가 한 통 왔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전년도에 문학 수업을 담당했던 한 학생으로부터 온 시였다. 학교 홈페이지에 공지된 학급 배정 결과를 통해 내가 제 담임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 중 몇 구절을 보내온 것이다. 한 해 동안 잘 지내보자는 인사도 덧붙여서 말이다. 고마움과 감동에 더불어 그의 마음이 성큼, 다가온 것이 느껴졌다. 그렇다. 곧 만날 서른네 명 학생들이 그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함께' 한눈에 잡히지도 않는 커다란 구름 산이 되어 나에게 오고 있었다. 그들의 일생에서 열아홉 한 해가 지니게 될 의미를 감히 더듬어보며, 새 학기 첫날 그들을 맞이할 마음을 조심스레 마련했던 기억이 난다. 시를 선물 받는 기쁨을 맛본 뒤부터 마음에 드는 시를 만날 때마다 차곡차곡 모으기 시작했다.


틈틈이 학생들과 같이 나누고 싶은 시들을 교실 뒤편에 붙여 놓기도 하고 동료 선생님들과 좋은 시들을 담은 조그만 시 모음집을 만들어 함께 읽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좋은 시를 찾으려 시집도 많이 사 읽었다. 어느 봄날에는 이전에 근무했던 중학교의 학생이 문득 시를 전해온 적도 있었다. 어쩐 일인가 하니, 학교에서 감사의 날 행사로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시 한 편을 보내라고 했단다. 담임도 아니었던 나를 세월이 흘렀는데도 떠올려 시를 보내준 그 마음이 고마웠다. 문자메시지로 받은 김용택 시인의 '참 좋은 당신' 덕분에 나도 내 마음에 '햇빛이 들이치는 기쁨'을 느꼈다. 시는 마음을 전하기에 탁월한 매개체다. 짤막하기에 큰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외기도 좋다. 특정한 시적 상황에서의 감정을 이야기하고 있기에 읽는 이가 저마다의 처지에 따라 쉽게 공감할 수도 있다. 만일 국어 교과서 바깥에서 시를 접한 경험이 없어 박제된 기억뿐이거나 시라는 것이 멀게만 느껴진다면, '노래'를 떠올려보라. 우리는 축하하는 자리에서 또는 감사나 사랑을 표현할 때 노래를 부르곤 한다.


말로는 다 표현하기 힘든 마음을 노래의 가락과 구절 속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랫말이 곧 시이기 때문이다. 시도 마찬가지다. 시를 나누는 것은 노래로 마음을 전하는 것과 같다.
여기, 재미있게 시를 나누는 방법이 하나 있다. 색지에 시를 적거나 인쇄한 뒤 '시 제비'를 만든다. 평소 제비뽑기 때 하듯이 그냥 접어도 되지만, 돌돌 말아 색색 끈으로 예쁘게 리본을 묶어주면 더 좋다. 인원수에 맞추어 시를 선정하여 각기 다른 시가 적힌 시 제비들을 준비한다. 이제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준비한 시 제비를 하나씩 뽑는다. 그러면 어떤 기운의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뽑은 사람의 상황이나 심정에 딱 맞는 시가 뽑힌다. 그야말로 그 사람의 '운명의 시'다. 뽑은 다음에는 자신이 뽑은 시를 돌아가며 낭송한다. 시는 노래와 같기에 사람의 목소리가 더해질 때 진가를 발휘한다. 소리 내어 시를 읽고, 귀 기울여 시를 듣는 풍경 속에서 읽는 이와 듣는 이 그리고 시 쓴 이의 마음이 만난다. 아름다운 봄날, 한 편의 시를 나누며 보다 환해지시길, 한층 더 따뜻해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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