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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편집이사 겸 국장
 

 

지난주 반구대암각화와 관련한 두가지 소식을 접했다. 반구대포럼이 대곡천암각화 세계유산등재를 위한 물 절약 캠페인을 추진한다는 것이 첫 번째 뉴스였다. 첫 뉴스를 듣자 목포 부동산 의혹의 주인공인 손혜원 의원이 생각났다. 그는 반구대암각화 보존을 위해 울산시민들은 변기 용량을 반으로 줄일 것을 제안한 모임의 당사자였다. 다음 뉴스는 언젠가 필자가 이 칼럼을 통해 제안했던 좀 과격한 반구대암각화 보존안의 확장판이었다. 울산 미래비전위원회가 반구대암각화 보존을 위해 사연댐을 철거하고 대곡천을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재자연화 선포'를 울산시에 제안했다는 내용이었다.


두가지 뉴스는 모두 반구대암각화 보존을 위한 울산사람들의 안타까움이 반영된 뉴스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왠지 뒷덜미가 뻣뻣해지는 외침이었다. 첫 뉴스부터 보자. 주창자는 반구대포럼이다. 이 단체는 '물 절약으로 반구대암각화를 물로부터 구해내자'를 슬로건으로 정하고 '5만 톤 반구대 시민댐 건설'을 위한 100만 명 서명운동을 지난달 23일부터 대곡천 현장에 있는 반구대포럼 사무실에서 시작했다고 밝혔다. 언론에 보도된 이 단체의 대표는 “울산시민들이 10%의 물을 절약하고 울산시가 누수량을 줄이면 물 절약으로 5만 톤 댐 건설은 가능하다. 5만 톤 반구대 시민 댐이 건설된다면 사연댐 수위 조절로 인한 물 감소량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며 “반구대암각화 보존을 위한 울산시민들의 진정성이 국제적으로 알려지면 댐건설 중단 캠페인으로 세계유산에 등재된 '코아 암각화의 기적'을 울산도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다"고 밝혔다. 감동적이다. 울산시민의 물절약 노력이 실현되면 코아의 기적이 재현된다는 연결성은 가히 놀랍다.


이 단체의 주장은 몇해전 국회에서 열린 반구대암각화 보존을 위한 세미나에서 나왔던 이야기의 연장선 같은 느낌이다. 이 세미나는 툭하면 울산시민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던 손혜원 의원이 주최했다. 이른바 '절수변기'로 울산시민의 분노를 산 바로 그 사람이었다. 지난 2017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 손혜원 의원(당시 더불어민주당 소속)은 이른바 '빗물 박사'로 알려진 토목상하수도 전문가인 한무영 서울대 교수를 증인으로 초청해 이같은 요지의 의견을 발표했다.


한 교수는 이 자리에서 절수 변기설치와 빗물 저장시설 등을 활용해 물 사용량을 줄여 사연댐 수위를 낮추자고 주장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주장이었다. 한 교수는 “울산 시민의 1인당 하루 물 사용량은 280여ℓ로 세계 주요도시의 150ℓ보다 많다. 물 수요를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기존 13ℓ변기를 4.5ℓ초절수 변기로 바꾸면 1인당 물 사용량을 40ℓ가량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내 주요 도시와 비교했을 때 울산시민의 1인당 하루 물 사용량은 254ℓ에 그쳐, 16개 시·도 중 가장 적게쓰는 전남 240ℓ, 경남 244ℓ에 이어 전국 세번째로 물을 아껴쓰는 도시다.(환경부 '2014 상수도통계'·2015) 가관인 것은 문화재청의 반응이었다. 당시 문화재청장이었던 나선화 전 청장은 “새 대안을 환영한다"며 수자원관리공사 등 관계기관과 협의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 당시 손혜원 의원은 반구대 암각화 문제를 물문제와 연계해 문화재청을 압박했다. 손 의원은 울산시민들이 물을 함부로 쓰니 물절약만 하면 암각화를 보존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며 울산시민들을 조롱했다.


다음 뉴스로 넘어가 보자. 울산 미래비전위원회가 반구대암각화 보존을 위해 사연댐을 철거하고 대곡천을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재자연화 선포'를 울산시에 제안했다. 이를 위해 단기적으로 사연댐 여수로에 수문을 만들어 집중호우 때마다 물에 잠기는 암각화를 건져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재현 미래비전위원장은 울산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2019년 상반기 미래비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같은 내용이 담긴 '대곡천 재자연화와 반구대암각화 보존안'을 정책제안을 통해 주문했다. 안 위원장은 “기존의 '선 물 확보 후 반구대암각화 보존 대책'이 반구대암각화 훼손을 방기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 만큼 반구대암각화와 대곡천의 가치에 중점을 둔 보존 정책 선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안 위원장의 제안은 발상의 전환을 강조하는 신선한 주장이다. 무엇보다 반구대암각화의 보존에 무게 중심을 두고 이를 위해 모든 정책을 방향 전환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사연댐 폐쇄는 120만 울산시민들의 식수와 관련된 중차대한 사안이다. 사연댐을 젖줄로 하는 울산시는 물문제를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 문제는 문화재청과 정부, 그리고 일부 학계는 울산시민의 물 문제는 별개의 사안이라고 외면한다. 침수의 원인인 암각화 인근 사연댐의 수위를 현재 60m에서 52m로 낮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과연 물 때문에 반구대암각화가 지금처럼 훼손됐는지도 의문이다. 지난 1971년 암각화 발견 이후 50년 가까이 반구대암각화는 120여곳이 인공적으로 훼손됐다는 보고가 있었다. 천만의 말씀이다. 120곳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문화재 당국이 반구대암각화의 가치를 외면해온 세월 동안 문화재청이 승인한 전국의 대부분 사학과 학부생들이나 전공자들, 학계인사들이 솜방망이로 반구대암각화 암면을 두들겼다.  그 진동이 미세한 것이라고 우기지 마라. 진동은 고사하고 어떤 기관에서는 암면의 강도를 조사한다며 해머로 70여곳을 타공하기도 했다. 구멍을 낸 사례도 있고 쪼아서 뜯겨진 사례도 있다. 이 따위로 방치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과거로 치부하고 이제와서 물이 문제라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맞는 말이다. 사연댐이 없었다면 지금의 보존 논란은 애초부터 있지도 않았을 논란거리다. 그런데 사연댐이 어떤 구조물인가. 사연댐은 박정희 군사정부가 대한민국 근대화의 심장으로 울산을 지목한 뒤 시작한 구조물 1호다. 울산공업단지의 용수를 해결해야 공장의 검은 연기를 울산 하늘에 뒤덮을 수 있다는 필연적 논리로 박정희 군사정부는 1962년부터 1965년 사이에 태화강의 지류인 대곡천 수계를 막았다. 이 댐을 막아 사용한 50년 세월동안 울산은 거친 숨소리를 내며 배를 만들고 자동차를 생산했고, 석유화학공단은 수출전진기지로 이 땅에서 가난을 몰아냈다. 바로 그 현장에서 발견한 것이 인류 문화의 원형인 반구대암각화다.


다시 반구대암각화를 정면으로 마주해 보자. 반구대암각화는 겨울잠에서 깨어난 선사인들이 봄날의 시작과 함께 풍요의 신, 전능한 대자연의 신에게 제의를 행하고 울산 앞바다로 배를 띄워 포경에 나선 발원의 상징물이다. 어디 그 뿐인가. 반구대 암각화의 지정학적 상황은 절묘하다. 암각화 맞은 편에 펼쳐지는 언덕과 그 배경을 이루고 있는 산과 골짜기는 대한민국 선사문화의 일번지다. 대곡천 위쪽의 천전리 각석부터 사연댐 입구의 반구대암각화까지 두 암각화 사이엔 오묘한 기운이 흐른다. 원시 신앙의 발원지이자 해양문화와 대륙문화가 곡선과 직선으로 만난 지점이 바로 이곳이다.


보존안을 두고 공방과 논란, 삿대질만 오가는 상황에서 나온 이야기가 사연댐 폐쇄였다. 그래서 필자는 '차라리 사연댐을 폐쇄하라'고 적었다. 그 문장의 핵심은 본질을 외면하는 현실에 대한 경고였다. 반구대암각화의 보존과 세계유산 등재의 정담은 이미 나와 있다. 지금 진행되는 암각화군 운운하는 세계유산 등재작업을 중단하고 반구대암각화 하나에 집중해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집중하는 것이 본질이다.


세계의 수많은 문화유산을 둘러보면 거의 대부분이 문화유산 주변에 사람들의 일상이 공존하고 있다. 원형보존은 자연유산에 한정된 이야기지만 이상하게 우리는 반구대암각화를 원형보존이라는 틀에 가둬 놓았다. 우리 스스로 그렇게 올가미를 씌원버린 셈이다.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살피고 정책적 제안을 하는 것이 미래비전위원회가 할 일이다. 정치적 수사나 선동적 발언, 충분한 검증 없는 제안은 정책에 혼선을 줄 뿐이다. 반구대암각화 문제는 단순한 접근으로 해결책이 도출되기 어려운 문제다. 섣부른 주장은 고기 몇 마리 잡자고 저수지 물을 다 빼라는 식의 주장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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