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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령 前 울산시의회 부의장

어릴 적 한번쯤 읽었던 동화 '피노키오의 모험'을 누구나 기억하지만 풀 스토리를 구술하는 일은 쉽지 않다. 피노키오에게 진실한 용기를 증명할 수 있다면 진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요정의 말은 결국 자신을 만든 늙은 목수 제페토를 고래 뱃속에서 구해내면서 실현된다. 하지만 제페토를 구출하다가 죽은 피노키오의 용기는 진정한 소년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요정의 목소리가 들리고 피노키오는 소년으로 되살아난다. 카를로 콜로디가 쓴 '피노키오의 모험'은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언어로 번역된 가장 유명한 동화중 하나다. 카를로 콜로디는 이탈리아의 장래를 짊어질 어린이들을 훌륭하게 키워야겠다는 생각으로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는 후문은 피노키오의 '용기'를 곱씹어 보게 된다. 


피노키오의 모험을 읽고 들으면서 자란 아이들이 비록 동화의 이야기를 모두 기억할 수는 없지만 거짓말을 하면 코가 쑥 길어진다는 부분은 오랫동안 기억 한편에 남아있는 우리들의 정의다. 우리에게 동화 '비오는 날'과 '새벽'으로 잘 알려진 유대인 작가 유리 슐레비츠는 '오즈의 마법사'를 읽고 난 경험을 이렇게 회상했다. “조국 폴란드가 나치에게 점령당해 러시아로 피난을 갔을 당시, 10살 어린아이의 춥고 배고픔을 잊게 해준 작품이다." 영국에는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있고 독일에는 그림형제, 프랑스에는 페로의 작품이, 덴마크에는 안데르센의 작품이, 이탈리아에는 '피노키오'가 있다면 미국에는 프랭크 바움의 '오즈의 마법사'가 있다고 말할 정도로 미국인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사실 '오즈의 마법사'는 출판이후 100여년이 지나는 동안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동화가 되었고 꼭 동화를 읽지 않아도 도로시, 양철나무꾼, 겁쟁이 사자, 허수아비 캐릭터와 주제음악 '무지개 넘어(Over the Rainbow)'로 잘 알려진 영화를 많이 관람해 매우 친숙한 작품이다. 정말 '일곱 빛깔 무지개 너머 무엇이 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일곱 빛깔 무지개 너머엔 우리의 일상이 있을 뿐이다. 미국 캔자스에 살던 도로시는 우연히 회오리바람을 타고 환상의 나라 '오즈'에 떨어지게 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전지전능한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 나선다. 마법사를 찾는 여정 중에 만난 머리가 밀짚으로 만들어진 허수아비는 지혜를, 양철 나무꾼은 따뜻한 심장을, 강아지조차 무서워하는 겁쟁이 사자는 용기를 얻는 게 소원이다. 하지만 정작 오즈의 마법사는 “너희들은 이미 원하는 것을 갖고 있단다. 허수아비의 지혜와 양철 나무꾼의 따뜻한 마음과 사자의 용기가 없었다면, 너희들은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야"라며 환상이 아닌 현실을 이야기한다. 자신을 변화시켜주는 마법은 외부가 아닌 자신의 내면에 있다는 것을 깨우쳐준 것이다.


동화가 오랜 세월 동안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는 것은 그 독특한 상상의 세계를 통해 인간 세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결국엔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를 깨우치게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본질보다 현상에 매몰되어 있는 우리는 너무 숫자, 이론, 보여지는 것, 대중이 좋아하는 것, 다수의 의견을 중시하고 그것에 흔들리는 나머지 자신의 목소리와 줏대를 잃어버린다.


그 결과, 현실에 안주하고 어릴 적 꿈꾸었던 모험정신은 현실에 부딪치면서 사라진지 오래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어렸을 적 누구에게나 이루고 싶은 꿈은 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현실에 동화될수록 그 꿈은 그저 치기어린 사치가 되어버리고 만다. 먹고 살기도 바쁜 와중에 꿈을 꿀 시간도 없거니와, 지금의 안정적인 삶을 깨트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안정적이던 삶이 깨지거나 인생의 패러다임 자체가 변화하는 시기가 올 때가 있을 것이다. 우리들은 '아직도 가야할 길'에 서 있다. 각자 가는 길은 다르지만 여전히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야 한다. 힘들고 긴 여정이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스스로에게 들려줄 희망과 용기의 힐링 메시지가 고갈되면 어릴 적 감명 깊게 읽었던 동화를 쓰윽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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