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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편집이사 겸 국장

지난 주말 울산에서는 동네마다 벚꽃축제가 열렸다. 십여년 전까지 작천정 벚꽃 축제 하나가 대표적인 축제였지만 이제는 왠만한 동네 벚꽃길은 축제의 장이 됐다. 벚꽃은 보통 1~2주 정도 피어 있기에 이번주말이 절정기라 할 수 있다. 벚꽃 하면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진해 군항제다. 진해에서 해마다 4월초에 열리는 군항제는 한 때 일제의 잔재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일제가 진해에 자신들의 국화인 벚나무를 마구잡이로 이식해 일본의 혼을 퍼뜨리려했다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진해에 벚나무가 본격적으로 심어진 것은 일제강점기가 맞다. 일본 해군이 도시미화용으로 벚나무를 심기 시작하면서 진해 일대는 벚꽃이 번식했다. 1945년 해방 직후에는 벚나무가 일제의 잔재란 이후로 무차별적으로 베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1962년 국내에 있는 벚나무는 일본 원산의 왕벚나무가 아니라 제주 벚나무라는 이야기가 돌면서 벚나무 살리기 운동이 일어났고 그 운동에 힘입어 진해 전역에 약 36만그루의 벚나무가 심어져 있다. 진해 군항제는 단순한 봄철 축제가 아닌 해군의 주요 축제 중 하나다. 1945년 해방 이후 해군의 모태인 해양경비대가 진해에서 발족된 이후 1952년 4월13일, 충무공 탄신일에 맞춰 진해 북원로터리에 충무공 동상이 세워지고 추모제를 올린 것이 군항제의 시초로 알려져 있다. 이후 1963년부터 '진해 군항제'란 이름이 붙여졌다.


봄철마다 전국이 벚꽃으로 만개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벚꽃은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꽃이다. 일제 강점기의 아픈 기억이 치유되지 않은 우리에게 벚꽃은 여전히 일본 제국주의 망령이 깃들어 있다. 일제가 자신들이 애지중지하는 벚나무를 침략정책의 하나로 동원했기 때문이다. 바로 '사쿠라 정략'이다. 을사조약으로 들어선 일본 통감부는 일본의 국화인 사쿠라를 서울의 도심으로부터 심기 시작해 전 국토를 덮게 하려는 음모를 시작했다. 창경원, 남산 장충단, 창덕궁의 사쿠라가 바로 이 정략의 일환이었다.


일제의 음흉한 사쿠라 정략의 저의를 알지 못했던 사람들은 벚꽃으로 봄을 그리고 찬양하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일제의 음모가 먹혀들어간 셈이다. 일제통감부의 당초 계획은 팔도의 모든 신작로의 가로수를 사쿠라로 할 속셈까지 있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우리나라에는 벚나무가 자생했지만 한번 화들짝 피고 사라지는 속성을 싫어했던 탓에 일반적으로 좋아하는 꽃나무는 아니었다. 일제의 야욕이 시작되고 왜인들이 한반도로 이주해 오면서 벚나무도 전국에 퍼져갔고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 서서히 우리 고유의 것처럼 되어 버렸다. 남의 나라 왕궁을 동물원으로 만들고 벚나무로 장식해 벚꽃놀이를 즐기던 왜인들의 정략이 4월의 꽃, 벚꽃의 화려함 뒤에 숨어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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