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희망을 찾는다
숲에서 희망을 찾는다
  • 울산신문
  • 승인 2019.04.04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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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구 울산시 녹지공원과장

4월 5일은 식목일이다. 올해로 74회째 맞는 국가기념일이다. 신라 문무왕 17년 2월 25일(양력 4월5일) 삼국통일을 이룩한 날이고 조선시대 성종이 동대문 밖 선농단에서 농업 장려를 위해 직접 밭을 가꾼 날이면서 1910년 순종이 친경제(親耕祭)를 거행해 손수 밭을 갈고 나무를 심은 데에서부터 유래하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왕의 생일과 겹친다는 이유로 4월 3일로 하다 해방이후 1946년에 4월 5일로 환원·제정되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산림은 불모지로 황폐해졌고 취사와 난방을 해결하기 위해 무분별한 벌채와 벌목이 이루어지면서 산림파괴는 절정에 달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1961년 산림법이 제정되면서 국민이 묘목을 심고 길러 산림을 바꾸는 범국민 조림정책을 세우게 되었다. 그 결과 짧은 시간에 대규모의 조림지를 조성하였고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히는 사례 인정받고 있다.


오늘날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면서 나무심기는 또 다른 사회적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총인구의 91%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반면 도시지역의 산림은 도시개발에 밀려 점차 줄어들었고 산림과 연접한 지역은 대규모 아파트가 선점하여 그나마 산림지역의 맑고 찬 공기가 바람길을 통해 도시지역으로 유입되므로 얻을 수 있는 환경효과도 막혀있는 실정이다. 그 뿐만 아니라 주거문화도 마당 있는 집에서 아파트문화로 변화한지 오래고 최근에는 집집마다 꽃화분 몇 개정도는 자리 잡고 있던 베란다도 사라져버렸다.


더군다나 기후변화의 경고는 이제 경고로 그치지 않고 실제로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세먼지의 경우 심지어 경고를 받는 단계는 이미 지났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안심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궁리를 하게 되는 방어적인 단계가 되었다. 미세먼지 피해를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미세먼지의 원인이 되는 석유 및 석탄과 같은 연료사용을 줄이는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우리 생활에서 화력발전과 자동차 사용, 겨울철 난방수요를 줄이는 것은 큰 어려움이 있으므로 연료사용 감축과 함께 미세먼지를 흡수 및 흡착하거나 발생을 억제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을 함께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식물을 심어 미세먼지를 흡수하거나 흡착하여 줄이는 방법이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도시에 조성된 나무 1그루는 1년에 미세먼지 35.7g을 흡수하고 1㏊의 숲은 미세먼지 46㎏을 포함한 대기오염 168㎏을 저감할 수 있다고 한다. 반면 우리의 실생활에 이용되는 경유차는 연간 1,680g의 미세먼지를 발생시킨다고 한다. 1대의 경유차를 이용한다면 47그루의 나무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도시지역 내 가로수, 녹지, 공원, 산림 등 도시림의 역할과 관심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우리 시는 지금까지 완충녹지, 도시공원, 도시숲, 가로수 등 다양한 나무심기 사업을 그 어느 도시보다 활발하게 추진하여왔다. 2018년 전국 도시림통계현황에 따르면 1인당 생활권도시림면적이 17.87㎡로서 전국 최고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시민들이 느끼는 체감도를 감안하면 아직까지도 부족한 실정이다.


우리 시는 지난달 21일 울산대공원에서 11개 시민단체와 협약식과 나무심기를 시작으로 올해부터 도시 곳곳에 앞으로 10년간 1000만 그루의 나무심기 사업을 추진해나갈 계획이다. 대표적으로 관에서 추진하는 미세먼지차단숲, 완충녹지조성, 백리대숲조성사업 등이다. 하지만, 관 주도로는 한계가 있다. 일손과 재정의 문제가 아니다. 나무 한그루 한그루의 가치를 같이 공감하고 애착을 가질 수 있도록 시민들과 기업의 관심과 동참이 어느 때 보다 필요하다.


나무는 대기오염 물질을 흡착하는 능력이 좋아야 한다는 전통적 기준도, 가뭄이나 조명공해나 병해충을 잘 견뎌야 한다는 생태적 측면도, 경관적으로 우수하고 이식이나 유지관리가 용이해야 한다는 경제적 논리도, 이제는 나무심기를 방해하지 못한다. 나무 한 그루를 베어내는 것에 일종의 죄의식을 느꼈던 시절은 지났지만, 이제는 벨 때 베더라도 또다시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절박한 목적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함께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이, 경제논리나 정치역학에서 바라보는 속된 관점이 아니라, 이제는 다함께 살아남으려는 진정한 생존의 시도라는 것은 분명해지고 있다.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식목(植木)의 시기에 우리는 이제 1000만 그루 나무심기 사업을 통해 시민과 함께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용기를 얻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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