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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시학(詩學)에서 비극을 정의하는 용어를 '카타르시스'란 말을 쓰게 되고 나서 이 용어는 모든 예술의 필요성을 대변하는 말로 통용되고 있다. 카타르시스란 본래 몸속에 쌓여있는 유해물질을 몸밖으로 배설하는 뜻으로 쓰인 그리스어다. 그래서 의학적으로는 세정(洗淨)을, 정신적으로는 정화(淨化)로 쓰게 된다. 

흔히 예술은 사회를 정화한다고 한다. 예술의 사회정화는 이미 일반적인 상식이 되었지만 이를 강조하면서 예술인과 일반시민의 인식을 문화국민의 긍지로 끌어들여 놓은 사람은 언론인 김성우 선생이었다. 한국일보 편집국장과 주필을 지내고 일간스포츠 사장이었던 그는 한국문단이 다같이 뜻을 모아 추대한 명예시인이었다. 

그가 이렇게 써 놓았다. "인간은 여러 가지 정념적(情念的)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이 욕구를 만족시켜 주면서 정념을 고결하게 정화한다. 예술은 정신의 여러 가지 맹목적 욕구의 배출구가 되며 이런 욕구가 제대로 배출되지 않으면 사회의 평화는 없어진다. 한 알의 내복약이 병적 체액을 배출시키듯이 사람들의 위험한 욕구를 처리한다는 뜻에서 예술은 일종의 설사약이요 세척제로 사회전체를 청정하게 만든다" 

나는 이 말을 되새길 때마다 매무새를 바로 잡으면서 예술을 되돌아보게 되지만 고향의 예술이 획기적인 전기를 맞는다든가 수확의 확신이 느껴질 때는 나도 모르게 감격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벌써 50년이 훨씬 지난 세월이 흘렀다. 그때 울산은 한가한 농어촌이었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예술의 향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공업센터 기공식이 있고 나서도 문화예술의 불모지란 오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은 시·구·군 어디에도 문화회관이 모두 들어선 당당한 문화생태환경도시가 되었지만 당시는 실로 앞이 보이지 않을 때였고 그런 현상은 울산예총이 창립된 1966년도까지 변변한 공연장이 없었다. 

그럴 때 예총의 임원이면서 음악단체를 이끌고 있던 예우가 있었다. 그가 시민들이 한 번도 공연을 통해 만나지 못한 관악연주회를 갖자고 제안했다. 수십 명의 단원이 악기를 가지고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공연장이 없는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느냐며 반대하는 분위기가 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기어이 해야겠다면서 굽히지 않았다. 시립미술관이 들어설 울산초등학교 강당에서 마흔명이 넘는 단원들로 구성된 대구계명대학교의 관악연주단이 연주회를 갖게 되었다. 

지방유지를 비롯한 각 기관장들도 모처럼 좋은 구경을 하게 한 예총을 격려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행사를 도맡아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게 한 사람은 울산예술고등학교 재단의 황우춘 이사장이었다. 문화예술의 불모지였지만 예술에 목마른 시민들은 메마른 땅에 비가 내려 식물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 듯 예총이 앞으로도 울산에서는 못 보는 문화행사를 자주 갖도록 해달라고 주문을 쏟아놓는 것이었다. 인간은 '정념적'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한 김성우 선생의 말이 절실히 옮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기억으로는 그때부터 예술공연의 관중이 차츰 바뀌지 않았느냐는 생각이다. 음악행사로 가곡과 오케스트라 연주로 방향을 바꾸었고 그래서 한병함이 지휘하던 부산시립교향악단, 루마니아국립교향악단이 울산에서 협연을 가졌다. 또한 정명훈의 삼형제인 정트리오 연주회, 이규도, 조수미 음악회도 마련할 수 있었다. 예총 역시 이러한 여세를 몰아 더욱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와 같은 큰 행사가 있을때마다 황우춘 이사장은 언제나 그가 가진 깊은 상식을 자상하게 자문해주었다. 이제와서 돌아보면 그만큼 울산예술 발전에 힘쓰고 기여한 사람이 또 있을까할 때가 있다. 그는 이러한 열정으로 선대에서 물려준 모든 유산을 쏟아부어 울산예술고등학교를 설립했다. 1993년에 개교한 울산예고는 삼천 백 여섯명의 졸업생을 내고 상급학교로, 사회로 내보내서 그들은 전국 각처에 흩어져 예술활동을 하거나 사회에 진출해 해당 분야의 일꾼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들이 한국의 예술인이라고 생각하면 실로 가슴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울산예고의 예술이 곧 울산의 예술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황우춘 이사장은 다시 큰 용단을 내리고 울산예술에 획기적인 일을 해 보이고 있다. 교육경험이 풍부한 그가 교육일선에서 물러나면서 학교와 울산예술발전에 힘을 보태주기 위해서 모든 국민에게 친근한 국민의 테너 엄정행 선생을 학교장으로 앉히고 자신은 재단 이사장으로 학교를 명문예술고로 키우기 위한 계기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나는 그가 초기 울산예총 시절에 보여준 자질을 믿고 또한 말없이 묵묵하게 실천하는 품성을 믿기 때문에 황우춘, 엄정행 콤비라면 학교 역시 능히 전국 최우수의 예고로 멋지고 아름답게 성장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이 아직 진행 중에 있는 문화예술의 도시 울산이 갖는 모든 시민들의 소망이기에 성원을 보내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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