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르담 대성당
노트르담 대성당
  • 김진영
  • 승인 2019.04.18 23: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진영 편집이사 겸 국장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불에 탔다. 첨탑 쪽에서 시작된 불로 대성당의 첨탑은 화마(火魔)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무너져 내렸다. 세계는 '인류 유산이 불탔다'며 비보를 전했다.

프랑스어로 노트르담(Notre-Dame)은 성모 마리아를 뜻한다. 이 때문에 이번 화재 사고는 프랑스인 모두에게 상처가 되고 있다. 이곳에는 성 십자가의 일부, 엘레나의 성정과 같은 예수의 수난과 관련된 성유물이 봉안되어 있다. 예수의 가시나무관이라고 믿어지는 유물은 잠시 이 곳에 있었다가 근처의 생 샤펠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이 일대는 성당 지구 모두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파리의 센 강변이라고 지칭된 문화적 유산이 세계 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노트르담의 역사는 1163년에 파리의 주교였던 모리스 드 쉴리에 의해 시작됐다. 그 이전인 갈리아, 로마 시대부터 이 지역은 성스러운 장소였으며 시대에 따라 다양한 양식의 교회가 세워졌다. 쉴리는 이곳에 도시에 어울리는 대성당을 세우기로 하고 대 역사를 시작해 한세기가 훌쩍 지난 1320년경에 공사를 끝냈다. 이후 노트르담 대성당은 많은 역사적인 사건의 무대가 됐다. 1239년에는 성왕 루이가 '그리스도의 가시 면류관' 등의 성유물을 임시로 안치했고, 1302년에는 필리프 4세가 최초의 3부회를 개최했다. 또 1455년 잔 다르크의 명예회복 재판이 열린 장소로도 유명하다. 1572년에는 나중의 앙리 4세와 마르그리트 왕녀의 종교 내란 평정을 위한 정략 결혼이 거행되기도 했다.

위기도 있었다. 이 성당은 파리 시민혁명을 거치면서 파괴돼 한 때 철거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이를 살린 것은 소설이었다. 중세 시대,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 꼽추 콰지모도가 종지기로 일하며 산다. 성당 앞 광장에 살던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가 엇갈린 사랑과 음해 때문에 마녀로 오해받고 교수형을 선고받았을 때, 콰지모도가 에스메랄다를 노트르담에 피신 시켰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1831년에 쓴 소설이다. 위고는 이 소설을 위대한 건축물에 바쳤다.

위고는 이 성당의 이름을 제목에 붙일 뿐만 아니라 이 성당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본문에 담았으며, 고딕 건축물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특별히 썼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소설은 철거 위기의 노트르담을 살려냈고 매년 1,200만 명 이상이 찾는 세계인의 상징물이 됐다. 특히 위고의 작품 이후 이 성당은 영화와 애니메이션, 뮤지컬에서도 사랑받은 명소로 떠 올랐다. 1911년 프랑스 무성영화 '파리의 노트르담'을 시작으로 알려진 것만 8편의 영화 또는 만화영화가 만들어졌고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은 대배우 앤서니 퀸이 열연한 '파리의 노트르담'(1956)이다. 우리나라에선 '노트르담의 꼽추'라는 제목으로 관객들을 찾았다. 편집이사 겸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