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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릉

장선희

도래솔이 가마우지가 되는 곳이 있다
굽은 몸들이 서로의 물길
꿈틀대며 열어줄 때
가마우지 깃털 같은 어스름이 상륙한다
그러면 날갯죽지 돛대로 세우고
천 년 잠에서 알 하나 둥실 뜬다
물때를 기다려 달빛 부서지고
날갯짓 소리가 저어가는 어둠,
꿈도 오래되면 둥글어지는지
그 한쪽을 밀치고
희뿌염한 지상의 달이 항해를 시작한다
더 어두워질 때를 기다려
먼 바다로 나서면
긴 목 뽑아 하늘로 자맥질하는 가마우지들
별을 사냥하고도 삼키지 못해
목울대가 가지로만 커가는 도래솔
적막도 오래되면 나무처럼 자라는가
오랜 잠에서 뻗은 가지가
가마우지처럼 긴 목을 늘여 구불텅
천년 묵은 살찐 고요를 삼키고 있다.

△장선희: 경남 마산 출생, 2012년 웹진『시인광장』제1회 신인상 등단, 2008년 월명문학상.
 

한영채 시인
한영채 시인

봄은 들이닥치듯이 한꺼번에 꽃을 몰고 왔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촉촉히 부드러워지자 가지 끝은 바쁘게 물을 길어 올린다. 봄의 식물은 기다림이 일이라 했는데 기다릴 새도 없이 앞다퉈 화들짝 동백이 피고 개나리, 진달래도 따라 피고 목련, 모과 목단까지도 기다릴 새도 없이 봉오리를 터뜨리고 있다. 봄꽃이 하나 둘 피고지면 새싹이 일제히 일어나 가로수인 은행나무, 강변 삼나무도 아래로 부터 연두 빛 싹을 돋우고 있다. 모더니즘 시인인 T.S엘리엇(Thomas Stearns Eliot 1888~1965)은 시 황무지에서 겨울을 보내며 생명력이 잠든 구근을 틔우는 사월을 잔인하다 하였으나 꿈틀 뿌리를 일깨우는 봄은 위대하다. 그날 소소리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지난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군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에 희생된 꽃띠 단원고 학생들을 생각하면 사월은 잔인하다고 하지 않을까, 오지 않은 먼 곳을 향하여 기다림이 일인 것처럼 그들은 오늘도, 올해 5주기를 맞아 봄꽃 한아름 놓고 다시 명복을 빈다.
처용은 어디에서 왔는가, 신화를 따라 괘릉을 간다. 경주 입구로 들어서자 하늘은 맑고 시원한 바람이 분다. 장 시인은 괘릉을 가마우지처럼 긴 목을 늘여 천 년 묵은 살찐 고요를 삼키고 있다고 한다. 어제와 오늘이 고요로 이어지고 입구에서 처용을 닮았다는 서역에서 온 사신이 사월 연두빛으로 릉을 가두고 있다. 촘촘히 박힌 구불텅한 굵은 소나무가 알 하나를 품어 원성 왕릉의 기운을 키우며 두둥실 달처럼 떠오를 때 달빛 아래 적막한 물길이 흐르고 문수산 기슭 망해사의 안개가 나무처럼 자란다. 저 멀리 처용암 보이시는가, 소소리 바람이 처용암을 때리는 사월의 파도는 오늘도 출렁인다. 시는 신화에서 오고 신화는 시의 역사이기도 하다.  한영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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