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원자력발전소(이하 원전)는 설계에서부터 건설, 운용 및 해체로 이어지는 최대 60년 이상의 생을 살아간다. 

고리 1호기의 경우 40년 간 전기를 생산하다 2017년 영구 정지되었고, 이제 20년 이상 소요될 것이라 예상되는 해체 작업을 통하여 마지막 장례를 치를 준비를 하고 있다. 사람은 길어야 5일의 장례식을 거쳐 생을 마감하게 되지만, 원전의 경우에는 20년 이상의 긴 여정을 거쳐야 40여 년 전 그 때로 복원되는 것이다. 이렇게 원전은 안전하게 건설해서 운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뒷마무리, 즉 더 안전하고 완벽하게 해체되어야만 아름답게 그 생을 마감할 수 있다. 

4월 15일 산업통상자원부는 부산시, 울산시, 경상북도, 경주시 및 한국수력원자력 등과 '원전해체연구소 설립 및 운영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 협약에 따라 부산과 울산 경계에는 원전해체연구소 본원을, 경주에는 가칭 '중수로해체연구소'를 설립하기로 했다. 원전 해체를 위한 본격적인 연구 개발 노력이 국가적 차원에서 박차가 가해졌다. 

원전해체산업은 최근 미래형 신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시장 규모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추산으로 국내는 2030년까지 약 10조 원, 세계는 2050년도까지 440조 원 규모이다. 요즘과 같은 경기침체 시대에 원전해체산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다.

이렇게 원전해체 기술력 확보가 중요해지고 있는 가운데 원전해체연구소의 구체적인 설립계획 수립은 시기적절한 정책이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원전해체연구소를 유치하게 된 지자체들은 연구소를 유치한 사실에만 집중하고 있다. 

부산시, 울산시 및 경주시 모두 원전해체연구소 유치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각 지자체 내 기관 및 기업과의 협력, 전문인력 양성 등 원전해체산업 기반 마련을 위한 청사진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들 지자체의 행보를 보면 국가적인 원전해체 기술 자립이라는 궁극의 목적은 뒤로한 채 지금 시점에서 각 지자체의 이익을 늘리는 데 더 관심을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원전 해체는 △해체 준비(해체계획 등 수립) △사용 후 핵연료 냉각 및 반출 △제염(방사성 물질 제거)과 시설물 철거 △용지 복원의 복잡하고 다양한 기술이 종합적으로 필요하다. 각 지자체가 각개전투로 고군분투하더라도 고지를 점령할 수 없는 고장난명의 과제이다. 지금 시점에서 각 지자체는 자신의 이익 계산이 아니라 관련 지자체와 어떻게 협력하여 원전해체 기술을 확보해 나갈 것인가 하는 보다 통합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지금 원전해체연구소의 입지 발표를 두고서 "지역 안배를 위한 정치적 배분"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심지어 산업통상자원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원전해체기술의 연구개발(R&D) 주도권을 놓고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는 지적까지 대두되고 있다. 지자체마다 자기 이익만을 위해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는 우려이다. 

원전해체연구소를 유치하는 것만으로는 각 지자체에 발생할 경제적 파급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다. 연구소가 설립되어 단지 몇 백 명의 연구원이 채용되고 일부 연구비가 투입된다고 지역경제가 살아나지는 않는다. 

각 지자체의 강점을 살린 원전해체 특화 분야를 집중적으로 육성하여 관련 지역 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켜야 산업 형성과 함께 수확을 거둘 수 있다. 따라서 지자체별로 원전 해체와 관련한 강점 분야가 무엇인지를 객관적으로 파악해 지자체 간 역할 분담과 협력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도 부처 간 주도권 다툼이 아니라 통합적인 컨트롤타워를 운영하여 각 지자체 및 유관 기관들이 상호 경쟁과 협력을 통해 원전해체기술 개발이라는 궁극의 목적을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게 유도해야 한다.

유럽연합(EU), 북미, 일본 등 선진국은 이미 해체기술을 충분히 갖추고 있고, 원전 해체 경험도 우리나라에 비해 풍부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빠른 시간 안에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를 줄이고, 나아가 세계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정부, 지자체, 연구소, 대학, 기업 등 모두의 역량을 모아야 한다. 1970년대 원전 건설 및 운용의 후발 주자로 시작해 당당히 원전 수출국이 된 것처럼, 원전해체기술 선진국을 만들어내는 지혜를 발휘할 때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