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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                                                 

이 상

역사를 하노라고 땅을 파다가
커다란 돌을 하나 끄집어내어 놓고 보니
도무지 어디인가 본 듯한 생각이들 게 모양이 생겼는데
목도들이 그것을 메고 나가더니
어디다 갖다 버리고 온 모양이 길래 쫓아 나가보니
위험하기 짝이 없는 큰길가더라.

그날 밤에 한 소나기 하였으니
필시 그 돌이 깨끗이 씻겼을 터인데
그 이튿날 가보니까 변괴로다 간데 온데 없더라.
어떤 돌이 와서 그 돌을 업어 갔을까
나는 참 이런 처량한 생각에서 아래와 같은 작문을 지었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라.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어떤 돌이 내 얼굴을 물끄러미 치어다보는 것만 같아서
이런 시는 그만 찢어버리고 싶더라.

△이상 시인 : 본명 김해경(1910년~1937년). 서울 경성공업고등학교 건축과 졸업. '이상한 가역반응[3]' '조선과 건축' 지로 등단. 시 '건축무한육면각체' '오감도', 소설 '날개' 등 발표.  
 

박진한 시인
박진한 시인

배경에 시인의 처지가 숨어있어서 난해합니다. 이상의 시는 그의 삶만큼이나 어렵고 고단합니다. 단순히 드러난 문장으로는 그냥 기차 역사 공사장에 무생물 돌 하나 끄집어내어 큰 길가에 버린 것을 아주 잃어버린 것 같으나, 엉킴의 시적 매개물조차 아주 단순하면서도 혼란스러운 것 같습니다만 이상의 시 중에서는 그래도 쉬우면서도 어려운 시라고 해야겠지요.


지금에서 보면 '시'에서 '시'를 언급하는 작품이 많이 있습니다만, 그 당시만 해도 자기모순을 표현함에 자신이 가지고 병부를 예리한 수술 칼로 도려내는 듯한 문장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아니면 그때에는 신비스러운 약일수도 있고요, 그의 희미한 기억 속에 사랑을 누군가 데려갔다는 것과 여인이 시인을 원망으로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일까요. 기생 '금홍'과 제비 다방을 차리고 외박이 빈번한 금홍과 다툼은 잦아지고 마침내는 가출해 버리고 만, 한 여인에 대한 심경을 토로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만 크게 보면 당시 낭만주의 시풍에 대한 반감이며, 모더니즘적 개척정신이라고 할까요. 평론가들은 이상은 신비주의자로 분류하기도 합니다만 결국엔 신비주의도 모더니즘의 시적 표현 방법일 뿐이지요. 시평으로서는 어렵게 설명이 됩니다만.


이런 시를 어렵게 읽는 것보다 독자가 느끼는 부분만 감상하시면 되겠습니다.
'잠시 지나간 내 사랑을 떠올리다 내 전부를 잃었구나, 정말 그대가 내 전부이었기에 한참 울고 또 지우고 싶으나 지워지지 않는구나' 이 정도 이해로.
 박진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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