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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금은 도금을 할 이유가 없다. 진짜와 가짜가 뒤엉킨 세상이니 이런 말이 나온다. 가짜는 분칠로 사람들을 속이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문제가 터지면 역시나 근본부터 들여다보게 된다. 

바로 울산시립도서관 이야기다. 울산에 시립도서관이 들어선 것이 딱 1년 전이다. 울산과 도서관의 역사는 오래됐다. 어쩌면 근대적 의미의 도서관은 울산사람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엄대섭 선생이다. 

울산과 지척인 경주에 가면 우리나라 최초의 공공 도서관이 있다. 지금의 경주시립도서관이다. 경주시립도서관의 전신인 경주읍립도서관의 초대관장이 울산 출신 엄대섭 선생이다. 우리나라 도서관 역사에서 엄대섭 선생은 중심이자 기원이며 출발이다. 새마을문고 창설자이면서 책 읽기를 통한 농촌계몽운동을 펼친 사람이 바로 엄대섭 선생이다. 전쟁 중이던 지난 1951년 개인 장서 3,000여 권으로 사립 무료도서관을 만든 것이 시작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울산의 도서관 운동이 경주로 옮겨진 것은 뼈아픈 일이지만 엄대섭 선생은 자신의 모든 책과 시설을 경주시에 기증했다. 그 이후 새마을문고를 열고 책 읽기 운동을 가속화 했고 바로 그 역사가 우리 도서관의 역사가 됐다.

그런 역사를 가진 울산에 제대로 된 시립도서관이 들어선 것이 딱 1년 전이다. 공업센터 반세기 동안 시립도서관 하나 갖지 못하다가 제대로 지은 도서관이니 자랑거리였다. 더구나 잘 지은 건물이 여러 군데에서 빼어난 외관으로 상을 받았고 벤치마킹하러 다른 지자체에서 잇달아 방문하는 일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잘 지은 도서관, 문화적 갈증을 풀어준 도서관이기에 시민들의 발길도 계속됐다.

통계로도 잘 드러난다. 울산도서관 개관 이후 1년간 124만여 명이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관 1주년을 맞은 울산도서관의 자료다. 지난 1년간 124만 2,000여 명이 도서관을 이용했다. 회원 수는 4만 5,733명이다. 하루 평균 이용자는 4,200여 명으로 이 중 60% 이상이 3층 종합자료실을 이용했다. 필자도 자주 이용한다. 

울산도서관은 전체 면적 1만 5,176㎡,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로, 총 6개 자료실과 매체 변환실, 지하보존서고 등을 운영하고 있다. 외관과 내용 모두 발전하는 과정에 있기에 대표도서관이라는 타이틀이 부끄럽지 않다. 하지만 과연 울산도서관을 우리가 자랑만 할 수 있는 것일까. 인테리어 미끈하게 해두고 단아하게 자리한 외관을 갖췄다고 울산의 자랑거리가 될 수 있는 것인가. 미안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말 많고 탈 많던 시설이지만 문 열자마자 가고 또 가는 시민들의 행렬은 역설적으로 얼마나 간절히 기다렸던 공공시설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간절히 기다린 시설과 제대로 만든 시설은 다른 이야기다. 

도서관은 지식정보의 시장이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축적해서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곳이 도서관이다. 그래서 도서관을 지을 때는 무엇보다 개방성을 중시한다. 특히 세계 유수의 도시들은 도서관을 그 도시의 상징이자 중심으로 만들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장 최근에 지은 세종시의 국립도서관이 세계 10위의 아름다운 도서관으로 이름을 올렸다. 황량한 세종시에 어마어마한 도서관을 지은 것은 미래를 내다본 생각이다. 무엇보다 이 도서관의 자랑은 총면적 307만㎡의 중앙녹지공간과 호수면적 32만㎡로 국내에서 가장 큰 세종호수공원 바로 옆에 자리했다는 점이다. 세종으로 이주를 꺼리던 많은 공공기관 직원 가족이나 공무원 가족들은 세종에 있는 바로 이 도서관과 공원을 둘러보고는 마음을 바꾸고 있다는 이야기가 과장은 아닌듯하다. 

울산의 사정은 어떤가. 울산시립도서관의 위치를 보면 울산이 가진 정신적 황폐함을 잘 보여준다. 울산이 대한민국 제1의 부자도시라고 하지만 정신적인 면에서는 천박함이 전국 제1의 도시다. 분뇨를 처리하던 곳, 화학공장이 밀집한 지역에 시립도서관을 지어놓고 문화도시로 거듭나게 했다고 자랑질이다. 천박한 행정의 대표적인 사례다. 도서관이 도시의 심장이 되고 도시의 미래가 된다는 사실을 간파했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울산이 어떤 곳인가. 대한민국 곳곳의 사람이 모여 오늘을 만든 도시다. 먹고 살기 위해 찾은 곳이 울산이지만 반세기가 지나면서 그들이 울산의 주인이 됐다. 한때 뜨내기 도시라 했고 공해백화점이라 불렸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 어느 누구도 울산을 뜨내기 도시니, 공해백화점이니 따위로 비하하지 못한다. 

반세기 전 울산을 찾아온 이들과 그들의 2세들은 울산의 변화과정을 고스란히 목격했다. 보고 듣고 체험했으니 누구보다 울산을 잘 안다. 그래서 바로 이들은 타지에 나가는 순간, 자신들이 살고 있는 울산의 홍보대사가 된다. 바로 그들이 그들의 자식들과 손잡고 찾아가는 곳이 시립도서관이다. 울산과 도시 규모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은 소도시 경주에도, 김해조차도 자신들의 랜드마크로 시립도서관에 정성을 들인다. 울산은 그저 예산이 1순위다. 어디에 짓든 도서관이면 되는 거 아니냐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도서관을 짓고 도서관 업무를 보고 이만하면 자랑할만하다고 떠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도서관 하늘 위에 떠다니는 오염물질이다. 도서관이 들어선 곳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유해 화학물질을 다루는 석유화학공단과 지척이다. 바로 이곳에는 울산 전체 악취업소 423개소 가운데 가장 많은 200곳이 몰려 있다. 악취는 남구 여천동 일대의 상습적인 민원이다. 도서관 공사가 시작되고 개관을 한 이후에도 여러 공장이 신·증설을 하거나 공사를 마쳤다. 최근에도 악취민원이 터져 공단지역이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지난 2016년 10월부터 최근까지 울산지역에서 발생한 악취 민원 1,000여 건 가운데 남구 주민의 신고가 300여 건으로 가장 많이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도서관이 들어선 지역의 하늘에 떠다니는 오염물질은 국제암연구소에서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한 미세먼지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황산화물(SOx), 대기오염물질인 탄화수소(THC), 법적 기준치 이내에서도 인체가 장기간 노출되면 폐 점막을 손상시키거나 폐 조직에 염증을 일으키는 질소산화물(NOx), 피부접촉이나 호흡기를 통해서 신경장애를 일으키는 독성물질로 알려진 휘발성유기화합물(VOC) 등이다.

그런데도 울산시는 도서관만을 고려해 공해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전체 대기질 개선 노력을 통해 문제 해결에 나선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공해문제에 대한 안이한 태도를 넘어 도서관의 위치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는 무뇌아적인 행정이다. 울산시 관계자는 "시립도서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인근보다 악취의 영향이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악취 원인 업체에 대한 적극적인 관리가 이뤄지는 만큼 악취에 대한 우려도 점차 사라질 것"이라는 기가 막힌 대답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문제는 왜 이 같은 민원을 뻔히 알면서도 울산시립도서관을 여천 위생처리장에 지었는가에 있다. 하필이면 그 많은 부지를 제쳐두고 이곳에 도서관을 지어 120만 울산시민의 자존심에 상처를 줬는지 밝혀야 한다. 

당시 시장의 임기 말에 서둘러 입지선정을 하고 제대로 된 여론 수렴을 거치지 않은 채 건립을 밀어붙인 관련자들은 두고두고 불편한 사실과 마주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당시 도서관 건립의 담당자들은 이름과 직책을 얼굴과 함께 동판으로 만들어 도서관 외벽에 영구전시해 둘 필요가 있다. 절대 벌어져서는 안 될 일이지만 만약 공단에서 공해 유발 사고라도 터지면 이들의 이름이 필요할지 모를 일이다.

공해 물질이 사라지거나 공단의 붉은 불기둥이 필요 없을 때가 아니면 환경개선이 어려운 장소가 현재의 도서관이다. 이 모든 사실이 검증되고 공론화한다면 지금 이시간에도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는 시민들이 정말 궁금할 일이 있다. 왜 이런 무시무시한 위험 지역인데도 아무런 설명없이 쾌적하고 멋진 도서관이라고 자랑질만 하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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