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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대 때 읽었던 『열하일기』를 오랜만에 다시 읽는다. 하도 오래전 일이라 그때 느낌이 거의 남아있진 않지만 예전이라면 그냥 지나쳤을 법한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예컨대 책의 끝부분에 나오는 사소하지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일화 같은 것. 연암이 열하에서 돌아와 연경에 남아있던 일행과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연암의 큼직한 보따리를 보고 무슨 진기한 물건을 가져왔나 싶어 서둘러 끌러보지만 종이뭉치만 가득한 것을 보고 실망하는 장면이다. 그 두툼한 종이뭉치는 연암이 노정을 기록한 일기와 중국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눈 필담들이다.

연암은 사람들이 기대한 골동품이나 서화, 은자, 약재 같은 귀중품 대신 자신의 체험을 기록한 '기록물'을 소중하게 들고 온다. 하루에 아홉 번 강을 건너고 닷새간 잠 한숨 못 자고 말을 달려야 하는 힘겨운 여정 속에서도 탐색과 기록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 기록을 바탕으로 『열하일기』라는 불세출의 기행문을 남기게 된다. 

열하일기엔 연암 이전에 조선 사신들의 숙소가 불에 탄 적이 있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만약 연암이 여행 도중 숙소에 불이라도 났다면 어땠을까. 아마 필담과 일기를 기록한 종이뭉치를 가장 먼저 챙기지 않았을까. 연암 자신이 대륙 여행을 통해 견문을 넓히고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사은사로 나서는 삼종형인 박명원을 따라나섰으니 기록물이야말로 연암에게 가장 중요한 귀중품이었을 것이다.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가 하는 것은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되고, 관점의 차이는 경험의 다름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젊은 시절 『열하일기』를 읽을 땐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왔던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나 '호곡장론(好哭場論)'에 감동을 받았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읽으며 유심히 보았던 곳은 벽돌과 수레, 말을 기르는 목마에 대한 부분이다. 아, 나는 이제 그만큼 현실에 발을 붙이게 된 것일까. 하지만 호곡장을 논하거나, 강물의 으르렁거림에서 외물과 마음의 관계를 깨닫는 연암과 수레의 바퀴를 살피고 깨진 기와를 들여다보는 연암이 다르지 않듯이, 나도 파란의 강을 지나 이제 수레와 말이 달리는 저자 거리를 걷는 중인 지도 모른다. 그 거리가 온갖 서적과 기물로 넘쳐났다는 연경(북경)의 '유리창(琉璃廠)' 같은 곳이라면 좋겠다. 

어쨌든 연암은 벽돌이나 수레, 기와의 크기, 모양, 만드는 방법 등을 꼼꼼히 관찰하고 우리나라와 다른 면을 세세히 기록하였다. 말의 경우는 우리나라 말이 작고 볼품없는 까닭을 분석하고 품종 개량을 위한 방법까지 제시한다. 그동안 적지 않은 사신들이 중국으로 사행길을 다녀왔을 텐데 이런 방면에 주목한 사신이나 관료들은 거의 없었다. 성리학적 관념론이 지배하던 사회에서 벽돌이니 기와니 온돌이니 수레니 하는 물질적인 것은 중요한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무엇보다 사신들은 황제를 '알현'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사행길에 올라 여타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연암은 외교관이 아닌 여행자로서 중국을 다녀왔다. 그러니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남달랐을 테고,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띄었을 것이다. 

여행자의 눈은 '주유(周遊)'의 너그러운 시선이고 그 움직임은 '유람(遊覽)'의 느긋함이다. 하지만 연암은 사행단의 일행으로, 그것도 시간에 쫓기며 가는 길이라 그런 여유를 즐길 겨를이 없었다. 대신 연암은 그 아쉬움을 특유의 호기심과 탐구로 채운다. 상점의 상호 하나 허투루 보지 않고 궁구하며, 남들이 자고 있을 때 몰래 일어나 중국 선비나 상인들을 만나 필담을 나누기도 한다.

소주의 가게에서 벽에 걸린 '호질'을 베끼는 장면은 뭉클하기까지 하다. 한 번으로 안 되니까 저녁을 먹고 다시 방문하여 촛불을 켜고 베낀다. 가히 철두철미한 기록 정신이다. (물론 '호질'을 연암 고유의 창작 방법이 동원된 순수 창작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지만, 타관에서 벽에 걸린 적지 않은 분량의 글을 베낀다는 발상 자체가 '연암답다'는 생각이 든다.)

『열하일기』를 다시 읽으니 무엇보다 연암 문장의 특징이랄까 장점이 눈에 들어온다. 번역 덕분일 수도 있겠지만, 쉽게 읽히고 눈과 귀에 쏙쏙 들어오는 글이다. "때마침 상현이라 달이 고개에 드리워 떨어지려 한다. 그 빛이 싸늘하게 벼려져 마치 숫돌에 갈아놓은 칼날 같았다. 마침내 달이 고개 너머로 떨어지자, 뾰족한 두 끝을 드러내면서 갑자기 시뻘건 불처럼 변했다. 마치 횃불 두 개가 산에서 나오는 듯했다" 밤에 고북구를 빠져나올 때의 풍경을 묘사한 부분.

"귀는 구름을 드리운 듯하고 눈은 초승달 같으며, 두 개의 어금니 크기는 두 아름이나 되고 키는 1장 남짓이나 되었다. 코는 어금니보다 길어서 자벌레처럼 구부렸다 폈다 하며 굼벵이처럼 구부러지기도 한다" 코끼리를 묘사한 글. 모두 눈앞에 골짜기가 펼쳐지고 코끼리가 코를 쳐들고 있듯이 선명하고 생생하다. '호질'을 소개하는 장면은 어떤가. "아마 이 글을 보면 다들 웃느라고 입안에 든 밥알이 벌처럼 튀어나오고, 튼튼한 갓끈이라도 썩은 새끼줄처럼 툭 끊어질 것입니다" 비유법이 감칠맛 나고 생기가 넘친다. 살아있는 글이다. 

연암은 글자를 병사에, 뜻을 장수에 비유하며 병법을 잘 아는 자가 버릴 병졸이 없듯이 글을 잘 쓰는 사람은 가릴 글자가 없다고 하였다. 글이 좋지 않은 것은 글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아, 글의 스승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일 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바투 놓여 있다. 오랜 시간의 틈을 메우기 위해서라도 저 유려하고 가슴 뛰는 문장을 다시, 자주 펼쳐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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