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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다. 눈부시게 푸른빛이 지천이다. 푸른 5월, 충분히 게으른 연휴이고 싶어 슬금슬금 울산 한 바퀴를 72시간 동안 거닐었다. 슬도부터 대왕암, 장생포와 간절곶을 돌아 반구대암각화 두리번거리다 각석과 봉계를 찍고 경주 언저리에서 정자바다와 관문성, 박상진호수공원 빙그러니 돌아 동천 따라 명촌을 지나 십리대숲에서 멈췄다. 내고장 울산은 참 곳곳이 이야깃거리다. 가는 곳곳이 진풍경이고 소담스런 이야기가 소곤거린다. 

자연과 함께한 시간을 지나 극장가에 들어서자 사정이 달라졌다. 줄줄이 어벤져스다. 개봉 10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열기가 울산의 극장가에서도 그대로 느껴졌다. 어벤져스에 문외한인 필자는 아이언맨 정도를 케이블 방송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본 것이 짧은 지식의 전부다. 아차, 내가 너무 아재가 된 게 아닌가 싶었다. 스크린의 거의 대부분을 장악한 어벤져스를 보면서 배급사들의 상업주의에 눈살을 찌푸린 것도 어쩌면 내가 아는 것에 집착한 편견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택의 다양성을 이야기하면서도 선호도의 절대적 강세를 인지하지 못한 외눈박이 같은 시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절대적인 쏠림 현상을 지배하는 지구최강에 대한 젊은 층의 열광을 광기로 바라본 우울한 고백일지도 모를 일이다. 

확증편향, 그랬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아는 것과 믿고 싶은 것에 의존한 외통수 사고가 일정부분 판단을 좌우해 왔다. 그런 편향성을 인정하는 순간, 모든 것은 조금 더 열린 쪽으로 보일 수 있다. 고백 같지만 사실, 외통수 같은 사고와 편향성이 언론인에게도 자리한다. 부단히 그 편향성을 끊고, 보다 열린 시선으로 세상을 보려 하지만 언제나 미흡하고 모자란 지점에서 고개를 떨군다. 

어쨌든 어벤져스는 지구최강팀으로 대한민국을 삼켰다. 그 와중에 김정은이 또 하늘에 대고 분탕질이다. 김정은은 보란 듯이 동해상으로 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쏘았다. 반응이 재밌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우리 정부는 입을 맞춘 듯 조심스럽다. 생소한 듯 생소하지 않은 '단거리 발사체'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이 쏜 미사일을 두고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라며 대화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폭스뉴스와 ABC뉴스, CBS뉴스에 출연해 북한 단거리 발사체 발사를 분석하고 미·북 대화에 관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정확한 분석을 위해 미 당국이 조사, 평가하고 있다면서 '단거리 발사체'라는 점을 강조했다. 폼페이오는 언론과의 인터뷰 내내 북한이 쏜 발사체를 '미사일'이라고 하지 않고 '그것들(they)'이라고만 지칭했다.

동해상으로 뭐든 쏘아 올리기만 하면 호들갑이던 일본은 더 재미있는 반응이다. 마이니치신문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후 일본 정부가 비난의 톤을 낮추면서 북한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마이니치는 이번 발사체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폐기를 요구하고 있는 탄도 미사일인지 여부는 현시점에서는 명확하지 않다고 일본 정부가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쿄신문도 일본 정부가 발사체에 대한 정보 수집을 서두르면서도 일본에 직접적인 영향은 없다고 판단해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아베 총리가 북일 정상회담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시끄럽게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북한에 항의할 예정은 없다"는 정부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당사자인 우리 정부는 더 애매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국가안전보장회의 대신 대책회의를 열었고 여전히 분석 중이라는 모호한 입장이다. 국방부가 나서 에둘러 단거리발사체 운운하며 신중보드를 유지하고 있다. 청와대는 곤혹스럽다. 며칠 후면 문재인 정부 출범 2주년이다. 취임과 함께 북한문제에서 '중재자 혹은 촉진자'를 자처해 온 문재인 대통령이기에 더욱 입장이 난처한 상황이다. 하노이회담 노딜 이후 대화를 중단하고 대남·대미 비판 메시지를 계속 내왔던 북한이 도발 쪽으로 선회하며 주먹질로 시위를 하자 표정관리가 불편해졌다. 대북 특사 파견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고 싶지만 돌아온 답은 새로운 무기의 발사다. 

그래도 친정부 인사들과 친정부 매체, 친정부 아니 친문계열은 사태수습에 혈안이다. 우파 쪽은 문재인 정부의 짝사랑 같은 대북 메시지나 대북 외교가 한 방에 날아갔다고 야단이지만 좌파 쪽은 그래도 내 사랑이다. 모두가 확증편향이다. 확증편향이 발생하면 기존 주장을 보강하는 정보는 적극적으로 수집하거나 믿는 대신에 그 반대의 정보는 의도적으로 회피하거나 불신하고, 결과적으로 심각한 편협에 빠지기 마련이다.

북한문제는 더욱 그렇다.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할 의사가 없다는 증거는 그동안 여러 경로로 확인된 일이다. 김정은과 그 추종자들은 그들의 헌법에 핵대국을 명시했고, 법률로도 확정했으며 행동도 변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김정은은 한 번도 핵무기를 폐기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북한식으로 말하면 한반도는 '조선반도'이기 때문에 그들이 동의한 "한반도 비핵화"는 라는 용어는 결국 '조선반도 비핵화'였다. 북한의 조선반도 비핵화는 그들이 핵무기를 개발하기 이전 김일성 시대부터 주장해온 것으로 미국의 핵우산(nuclear umbrella)이 제거되어야 한다는 한결같은 입장이다. 물론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한미동맹이 철폐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이같은 김정은식 비핵화를 우리 쪽에서는 서로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남쪽의 우파는 김정은의 의도를 속임수로 보고 좌파는 미국과의 협상에서 더욱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해서 전략적 태도로 본다. 어벤져스를 지구최강으로 보는 아이들과 상업주의의 독점적 현상으로 보는 꼰대적 시각만큼 그 입장은 간극이 크다. 

문제는 접점이다. 전략적 태도로 보든 속임수로 보든 해석의 기본 시각은 우리 민족의 미래에 위치해 있어야 한다. 김정은을 협상 테이블에 앉혀 놓고 이를 인정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김정은이 누구인가.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세습왕조의 후예이자 골수까지 빨갱이인 김일성 독재왕국의 살아 있는 유산이다. 김정은의 왕조세습 과정은 피의 역사다. 1인체제를 굳건히 하기 위해 패악을 마다하지 않은 할아비를 흠모하는 자가 김정은이다. 피 냄새를 따라 킁킁거렸던 할아비를 닮아 고모부 장성택을 찍어내고 독재의 축을 하나로 만들었다. 그리고 지난 세월 김정은은 군부와 노동당의 절대 복종과 충성을 강요하며 수시로 핵을 쏘아 올려 왕조의 세습완성을 자축했다. 바로 그 무자비한 통치자, 괴뢰도당의 수괴가 김정은이다. 그런데 남쪽은 변했다. 평화가 모든 가치의 우선이 됐고 우리는 하나다라는 구호가 평창 이후 절대 선이 됐다. 좌든 우든, 진보든 보수든 결국은 우리민족 아니냐며 우리는 하나에 동참하라고 외친다. 통참하지 않으면 민족의 배신자가 될 분위기다. 

평화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공동의 가치다.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문제는 그 평화를 우리 것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그 방법은 직선일 수 있고 곡선일 수도 있다. 때로는 몇 바퀴 돌아 다가갈 수도 있고 바라보고 흠모하다 지칠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가 직선으로만 가야 한다고 외친다. 미사일을 쏘아도 미사일이 아니라고 해야 하고 속임수가 눈에 보여도 속임수가 아니라 전략적 제스처라고 표현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렇게 흘러오다 보니 툭하면 분탕질을 하는 쪽은 슬쩍 뒤통수를 친다. 미사일을 쏘아도 발사체라고 적어주는 내 편이 있으니 걱정할 게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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