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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욕적으로 추진하던 행정 동명 바꾸기에 급제동이 결렸다. 울산 중구가 행정동 명칭을 숫자 나열식이 아닌 각 동의 지역성과 역사성 등을 살리는 방향으로 변경하고자 주민들의 의견을 물었으나, 상당수가 이를 원치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구는 지난 1월 행정동 명칭 변경에 대한 주민의견을 수렴하고자 지역 내에서 숫자식 동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반구1·2동, 복산1·2동, 병영1·2동에 대해 1차 설문조사를 벌였다. 1차 설문조사는 해당동 전 세대의 5%를 대상으로 실시됐으며, 반구1·2동에서 응답자의 60% 이상이 찬성의견을 보였다. 이에 따라 중구는 반구1·2동 전체 세대를 대상으로 2차 설문조사를 벌여 그 결과를 토대로 행정동 명칭 변경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2차 설문조사에서는 동별 2가지씩 명칭 변경안을 제시했으며, 이는 1차 설문조사 선호 결과에 따라 선정됐다. 반구1동은 '반구동'과 '내황동'이, 반구2동은 '구교동'과 '서원동'이 제시됐다. 

설문조사 결과는 중구의 의도와 달리 찬성과 반대가 엇갈렸다. 반구1동은 총 7,545세대 가운데 5,611세대(74.4%)가 응답했고, 이 중 4,034세대(71.9%)가 동 명칭 변경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찬성자 중에선 변경할 동 명칭으로 '반구동'을 택한 주민이 3,590세대(89%)로 압도적이었다. 반면, 반구2동은 동 명칭 변경에 반대하는 주민이 더 많았다. 반구2동 전체 4,207세대 중 2,719세대(64.6%)가 응답했고, 이 중 1,954세대(71.9%)가 동 명칭 변경을 반대했다.

이는 반구1동의 경우 숫자만 빠지는 명칭변경으로 주민들에게 큰 거부감이 없었지만, 반구2동의 후보군은 기존과 완전히 다른 명칭들이었기에 반대의견이 많은 것으로 중구는 분석했다. 중구는 이번 조사 결과에 따라 반구1동만 명칭을 변경할 경우 오히려 혼란이 생길 것으로 판단, 기존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중구 관계자는 "반구1동 주민 중에서도 '내황동'을 택한 주민은 소수일 정도로 동 명칭이 완전히 바뀌는 것에 대해 대부분 주민들은 거부감을 나타냈다"며 "반구2동의 경우 동의 역사성을 아는 지역 유지 및 단체원들은 '구교동'으로 명칭을 변경할 것을 희망했으나, 일반 주민들은 이미 27년 이상 불러온 명칭을 변경하는 것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고 전했다.

행정구역의 명칭을 바꾸는 작업은 울산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미 많은 지역이 명칭 변경에 나서는 추세다. 부산 북구의 경우 행정구역 명칭을 지역 특색이 담긴 이름으로 바꾸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부산 북구는 구 이미지 쇄신을 위한 구 명칭 변경 사업 관련 예산 1억 1,000만 원을 편성했다. 북구는 올해부터 명칭 변경에 필요한 기초자료 조사와 연구용역, 주민 공론화, 서명운동 등을 시작할 예정이다. 부산 북구 관계자는 "북구는 부산의 가장 북쪽도 아니고 단순히 방위(方位) 명칭을 딴 이름"이라며 "지역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이름이 필요한 만큼 지역 역사와 문화를 존중하면서 시대 흐름에 맞는 명칭으로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의 경우도 여전히 방위만을 고려해 중구와 남구 북구와 동구가 이같은 명칭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전국 특별시와 광역시 중 '북구'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기초단체는 울산을 비롯해 부산, 대구, 광주 등 4곳이 있다. 단순히 방위 이름을 딴 지역 명칭을 사용하는 곳도 전국에 25곳이 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개선 사례도 있다. 인천 남구는 50년간 사용하던 구 명칭을 '미추홀구'로 올해 바꿨다. 삼국사기에도 나오는 미추홀은 '물의 고을'이란 뜻이다. 

오랜 기간 획일적으로 사용해온 명칭을 바꾸는 문제는 쉬운 일이 아니다. 반대 의견도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지역의 정체성에 어울리는 명칭으로 바꿔나가는 데 있다. 지명 문제가 나온 김에 이번기회에 중구만이 아니라 울산의 전역에 행정구역상 정해진 구·군과 동, 읍면의 명칭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산업수도로 인식된 울산은 우리나라 어느 도시보다 경제개발에 따른 대규모 공장 등 공업단지 조성과 주거 공간 확보에 따른 토지 등의 형질 변경이 가속화됨에 따라 땅의 형상이 크게 바뀌었다. 그로 인해 과거의 지명들이 파괴, 변질되어 사라졌거나 없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에 대한 애정이다. 동네에 대한 애정은 무엇보다 지역을 알아야 한다. 아는 것이 지역 사랑의 첫 출발이다. 우리 동네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무턱대고 지명을 바꾼다고 하면 동의할 주민은 거의 없다. 반구동의 경우도 그 지역이 신라 천년의 국제무역항이었고 구강서원이 잇던 자리라는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행정동 변경은 많은 지지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체감할 수 있는 지명, 생활과 밀접한 주민센터 명칭을 찾아주는 것은 행정 서비스의 기본이다. 지금부터라도 지역 공부를 우선하고 그에 맞는 지명을 찾아가는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1,2,3동이나 동서남북으로 행정명을 부르는 것은 이제 지양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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