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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행(逆行)

이영필

소가 온몸으로 꼬리를 흔드는 건지
꼬리가 방울 소리로 큰 덩치 흔드는 건지
뱅뱅뱅 꼬리를 물고 맴도는 게 삶인지

나무가 벼랑 끝 잡고 버티고 있는 건지
바위가 뿌리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 건지
그 오랜 인연에 안겨 바윗돌이 금 간 건지

환한 달이 나뭇가지를 붙잡고 있는 건지
나무가 잡아끌어 더디게 가는 건지
늘 가던 그 길도 가끔 왜 낯설기만 한 건지

△ 이영필 작가: 경남신문신춘문예당선(95), 시집 '목재소 부근' '장생포 그곳에 가면' 외 성파시조문학상, 울산시조문학상 등.
 

현대사회는 도발적이고 다변화시대다. 보이는 것을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은 뭔가 손해 보는 듯하고 낯설기까지 하다.
시인은 위의 시를 통해 '소와 나무와 달'이라는 세 가지 이미지를 가져 왔다. 이들의 지극히 단순한 행위가 시인에게 포착되자 앞뒤, 상하를 뒤집어 본다. 그리고 마침내 대상과 눈빛을 교환하며 합일을 찾아낸다.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순행'에서 반대로 '역행'에 가 닿는다.


사실이지 '역'이란 단어는 무한한 상상력을 갖게 한다. 역습, 역모, 역류, 역풍, 역공 등 뜻함이 예사롭지 않다. 그것은 아무래도 순리를 거스르는 행위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살면서 우리가 어찌 인생역전을 꿈꿔보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때론 용기와 도전의식이 필요했고, 자기의 테두리 안에서 안주하려는 의식의 전환을 요구했다. 그래서 시인은 자신만의 역(逆)을 꿈꿔보는지도 모른다. 일탈을 통한 거스름에 가 닿기가 힘겨울 때 작품을 통해 홀로 만족의 희열을 만끽하는 지극히 단순한 행위를 하는 사람이 작가가 아닐는지.
위의 시는 '소가 꼬리를 흔드는 일' '나무가 벼랑 끝에 서 있는 장면' '달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모습' 등이 전부다. 그러나 이 이미지를 통해 '역행'을 도모하고자 하는 주체의 사물들은 시인의 감각으로 전혀 새롭게 전이된다.


'삶'이라는 단어 앞에서 엄청난 생의 전부를 다시 설정해야만 하는가 하는 물음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소꼬리의 흔듦을 통해 전체를 보아내는, 어쩌면 확대경을 눈앞에 바짝 들이대는 것과 다름 아니다. 또한 '바윗돌이 금간' 것은 결코 균열의 부정이 아니다. 세월의 주름살처럼 단순하고 아름답게 견디어내는 더 나아감의 끝에서 맞닿는 아름다움의 순간이다. 마지막으로 셋째 수에서 '늘 가던 길의 낯섦'을 통해 왜? 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우리의 여정에서 어떤 길로 들어서든 자문하고 자답하는 일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특히나 '역행'을 보는 시선에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낯익은 것을 낯설게 하고 그 낯섦 앞에서 사유하고, 인식의 전환을 통해 감각의 함의를 깊이 느껴보는 것도 독자의 또 다른 응시임을 믿고 싶다. 
 이서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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