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살아 숨 쉬는 선생님
계속 살아 숨 쉬는 선생님
  • 울산신문
  • 승인 2019.05.0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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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성 화봉중학교 교사

“샘~ 이거 한번 볼래요?"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에 내려오니, 옆자리 부장님께서 모니터를 내 쪽으로 돌리며 말하신다.
“무슨 사진이에요?"
“나 중학교 때 졸업 사진. 여기 학생들 좀 봐봐. 모두 몇 명이게?"
“와~ 진짜 많은데요?"
“전부 48명이지. 지금의 2배야~"


양복을 입고 두 손을 무릎에 얹은 남자 뒤로 단발머리에 세라복을 입은 48명의 여학생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고 있다. 옛날이야기처럼 나는 그 흑백사진에 빠져든다.  
“여기에 부장님도 있지요? 근데 다들 똑같이 생긴 거 같아 잘 못 찾겠어요."
“그래? 그럼 내가 독사진 하나 보여주지." 부장님은 다른 폴더를 열더니 계란 모양의 증명사진을 열어 보인다. 한 낯선 소녀가 단정한 눈매를 하고 미소 짓고 있다.
“부장님도 이런 시절이 있었군요."
“그래, 그땐 꿈 많은 소녀였지!"
“그럼, 혹시 기억에 남는 선생님도 계세요?"
스승의 날을 주제로 글을 쓰기로 한 나는 요즘 온통 '선생님' 생각뿐이다.


“그럼~ 당연하지! 나는 참 감사하게도 좋으신 선생님을 많이 만났어."
“이 남자 선생님이요?" 나는 모니터를 가리키며 묻는다.
“중학교 때 이 수학 선생님도 좋으셨지. 발음이 약간 이상하긴 했지만. 근데 내 초등학교 4학년 때 선생님은 나를 남겨 노래를 시켰지 뭐야. 내가 노래를 좋아하긴 했지만, 매일 새로운 악보를 보고 노래 부르는 게 쉽지는 안잖아?" 의아하다. 도덕 선생님의 입에서 노래라는 말이 흘러나오는 것이.
“근데 내가 전에 오페라 배우 했던 거 얘기했던가?"
“네에? 오페라 배우요?" 내 목소리가 커진다.


“응. 2013년도에. 저녁에 텔레비전을 보는데 오페라 배우를 모집한다는 광고가 나오는 거야. 오페라를 사랑하는 울산 시민이면 누구든지 참여 가능하다고 하길래, 그 자리에서 바로 인터넷 접수했지. 참~ 희한하지. 왜 그때 꼭 그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남편이라도 말렸으면 또 모르겠는데."
“우와~ 대단하세요. 오페라라니~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오디션 봤어요?" 점점 나는 이야기에 빠져든다.


“어떻게 됐을 거 같아? 그때 근무하던 학교에 교장선생님이 엄하신 분이라 차마 말도 못하고 밤에 아파트에서 노래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겨우 오디션 며칠 전에야 태화교에서 연습했는데…… 붙었지!"
“이야~ 정말 멋지세요!"
“처음에는 학교 마치고 저녁에 연습했는데, 공연 임박해서는 리허설 하느라 수업 당겨하고 조퇴했지. 지금도 그 방송국 홈페이지 가면 그때 녹화본 있을 걸? 내 인터뷰 영상이랑."
“살면서 오페라 무대에도 서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영화의 한 장면 같아요. 부장님 정말 부러워요."
나는 진심 부러움과 존경스러움을 담아 부장님을 바라본다. 그러자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던 부장님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때, 그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내 어깰 두드리며 말했어. '○○는 꼭 오페라 가수가 돼라'고. 그땐 오페라 가수가 뭔지도 몰랐는데 말이야. 근데 어쩜 그 말 때문이었을까? 내가 오페라 무대에 선 것이. 그래서 사람의 앞일은 모른다는 걸까?"  촉촉해진 부장님의 눈빛 너머로 모니터 속 흑백사진을 바라본다. 40년 쯤 뒤 나는 어떤 빛바랜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남을까? 아름다운 선생님은 이렇게 누군가의 마음속에 계속 살아 숨 쉬는 법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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