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구 서동 149-8 일원에는 사적 제320호 울산 경상좌도 병영성이 위치해 있다. 경상좌도 병영성은 경상좌도 병마도절제사영성을 줄인 말이다. 조선시대 때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낙동강 이동 지역의 동남해안을 방어하기 위해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가 머물던 성이다. 

경상좌도 병영성 전경.

# 경상좌도 병마도절제사영성
동천과 태화강이 만나는 안쪽에 위치한 병영성은 함월산 동쪽 해발 30~50곒지점에 계곡을 가운데 두고 좌우 능선을 이용해 쌓은 포곡식성(抱谷式城)이다.
1417년(태종 17)에 경주에 있던 좌병영을 이곳으로 옮겨와 쌓았다. 이후 1426년(세종 8)에 좌병영을 창원으로 옮기고 울산에는 진(鎭)을 두었으나, 1437년(세종 19) 도호부로 승격하면서 다시 좌병영을 설치했다. 정유재란 시기에는 왜군이 병영성 및 울산읍성의 성벽을 헐어다가 울산왜성을 축조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실제 서쪽 성벽 발굴조사에서 많은 성벽이 유실 됐음이 밝혀졌다.
이후 1895년(고종 32) 군제 개편으로 그 기능이 사라졌다가, 1900년 지방에 진위대가 설치되면서 진위대 제3연대 제3대대가 배치되기도 했다. 그러나 1907년 군대가 해산되면서 군사적 기능을 완전히 잃게 됐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등의 기록을 통해 사방 4개의 성문에는 모두 3칸 규모의 문루와 옹성을 갖추고 있었으며 성벽 곳곳에는 치성(雉城)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성벽에서 약 10~15m 바깥으로 방어시설의 일종인 해자를 설치했다.

노출된 당시 성벽 하부 모습.
노출된 당시 성벽 하부 모습.

# 4개 성문·문루·옹성·해자 등 갖춰
성내 시설로는 병마절도사 공관인 체오헌, 객사인 선위각(宣威閣), 객사 정문인 진해루(鎭海樓), 우후(虞候) 공관인 찬주헌(贊籌軒) 등의 주요 건물이 있었다. 부속 건물로 무기와 군수물자를 보관한 창고 등이 있었고, 연못 3개와 우물 7개가 있었다. 성의 외벽은 큰 깬 돌로 쌓아올리고 안쪽에는 작은 돌로 채웠으며, 간혹 길이가 긴 성돌을 중간에 걸쳐 놓아 바깥이 성벽이 무너져도 그 안쪽의 성벽이 붕괴되지 않도록 했다. 내벽은 외벽보다 작은 돌로 쌓았으며, 성벽의 너비는 약 7곒정도다. 지금까지 성벽의 일부구간, 성의 북문지와 서문지, 일부 건물지(객사 정문인 진해루)등의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으며, 현재 지속적인 정비가 이루어지고 있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