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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빛 하늘이/육모정 탑 위에 그린 듯이 곱고,/연못 창포 잎에/여인네 맵시 위에/감미로운 첫여름이 흐른다./라일락 숲에/내 젊은 꿈이 나비처럼 앉는 정오/계절의 여왕 5월의 푸른 여신(女神) 앞에/내가 웬일로 무색하고 외롭구나. (중략) 5월의 창공이여!/나의 태양이여!' 

'계절의 여왕, 5월'을 처음 언급한 노천명 시인의 '푸른 오월'의 시구가 아니더라도 창가의 햇살은 이미 필자의 들뜬 마음을 유혹하기에 더할 나위 없다. 여기저기서 뿜어대는 싱그럽고 아름다운 자태의 꽃들과 향기는 이 나이에도 설렘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이처럼 5월은 자아도취의 매력에 흠뻑 취하게도 하지만 가족을 돌아보고 또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사는 상생의 의미를 깨우치는 달이기도 하다. 지극히 교과서적인 말이긴 해도 우리는 계절의 변화 속에서 자연의 신비와 생활의 지혜를 배우게 된다. 

시대의 변화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생활의 행태나 문화가 달라짐에 따라 부모와 자식들의 위치나 역할이 그에 걸맞게 진화해야 마땅하다. 가족 사이의 갑갑하고도 부끄러운 사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고 있어 삶의 지혜는 물론 상호 교감 능력이 어느 때 보다 절실해 보인다. 

온갖 예찬과 수사(修辭)로 포장된 5월의 이미지 뒤에 도사리고 있는 일상의 아픔과 상처는 생각보다 훨씬 가혹하다. 통계로 드러난 청소년들의 자화상만 보더라도 슬픔과 절망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최근 발표된 정부의 '2019 청소년통계' 자료가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한마디로 우리네 아들딸들의 심신은 망가지기 일보 직전이다. 우울감 경험률이 지난해 27.1%로 4명 중 1명꼴이었고, 2007년부터 11년째 청소년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었다. 더욱이 자랑하듯 자해하는 청소년 문화까지 번지고 있다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아무리 극심한 경쟁에 내던져져 있다손 쳐도 정신적 피폐함이 이 정도에 달했다면 가히 재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폭력 문제를 다루고 있는 모 방송사의 드라마도 그렇고, 얼마 전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대학입시비리 스캔들도 이런 세태를 반영한 것이 아닌가 싶다. 사회 전반의 체질과 함께 게임의 룰을 바꾸는 근본적 개혁을 서둘러 마련하지 않을 경우 이 같은 참극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동학대 문제도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2001년 2,105건에 불과하던 것이 2017년에는 2만 2,367건으로 10배 넘게 늘어났다. 특히 아동학대로 숨진 어린이가 해마다 40명 가까이 이르는 데다 학대 행위자의 70% 이상이 부모라는 사실은 아연실색 그 자체다. 

가족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해야 할 가정이 해체되면서 가장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이 무너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쯤 되면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고 치유하면서 더불어 잘 살아보자'는 어른들의 목소리가 무색하다 못해 민망해 진다. 그야말로 '꼰대의 말잔치'나 다름없다.

독일문호 괴테는 '임금이든 백성이든 자기 가정에서 평화를 찾는 자가 가장 행복한 인간이다'라고 했다. 건강한 가정 없이 건강한 사회는 있을 수 없다. 나아가 사회의 건강도는 청소년들을 지탱해주는 큰 자산이 되는 법이다. 

울산 남구가 청소년 전용 차오름센터를 건립하는 배경도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학업에 지친 청소년들의 힐링과 재충전의 장으로서, 그리고 미래 산업을 선도하는 청소년 양성 특성화 수련시설로서의 역할이 기대되는 이유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매회 마다 애틋하게 눈물샘을 자극했던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마지막 회 나레이션 일부분이다. 울림이 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따스한 햇살과 신록의 청량감이 새롭게 와 닿았다. 그렇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이제라도 바쁘다는 핑계를 잠시 접어두고 가족 간 만남과 대화의 폭을 넓혀나가야 하겠다. 가족에게 투자하는 작은 시간이 행복을 찾는 첩경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 5월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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