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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권기만

사막이 직립해 있는 곳엔 가지 마세요
수천만 페이지 모래바람 펄럭이는 구릉,
낙타처럼 걸어가는 독서는 젊음을 화르르 쏟아놓곤 해요
거기 어디선가 별들이 소곤대지만 제 귀는 사르르 스쳐가는 소리만 읽어요
사막을 횡단한 사람도 첫발을 디딘 사람도 똑같이 발을 헛디뎌요
무너지기 좋을 만큼 발밑으로 바람이 흘러요
길이 있다는 말듣고 길따라 흘러 간 사람은 아무도 돌아오지 않아요
갈증이 깊어지면 모래가 물이 되는 사막엔 가지 마세요
은하수가 불모의 강이라고 읽기 싫어요
낙타가 되긴 싫어요
아버진 오래 전부터 모래였어요
바람뿐인 아버지를 낙타라고 읽긴 정말 싫어요

사막으로 출근하고 사막으로 퇴근하는 사람들이 발견한 아버지,
수천만 페이지의 사막을 다 건넌 사람은 없어요
사막을 횡단하다 사막이 되어버린 아버지,
아버질 펼치면 오아시스에서 별 헤고 있는 어머니,
스스스 미끄러지기만하는 어머닌 언제부터 유사의 강이었나요

바람을 만나야 길을 얻는 모래에게 바람은 낙타란다
낙타의 등에 올라 타렴
모래처럼 스스스 달려보렴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는 곳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위안이니

타박타박 낙타처럼 걸어가는 활자들,
길 잃으러 사막 간다
길 버리러 사막 간다

△권기만: 봉화출생, 2012년 시산맥 등단, 월명문학상, 최치원문학상 수상, 시집 '발 달린 벌'
 

한영채 시인
한영채 시인

이팝나무 꽃이 오월 거리를 밝히고 있다. 지난 시월부터 같은 길을 몇 달째 걷고 있다. 태화교를 건너 도서관으로 가는 길엔 아침을 여는 음악이 있고 태화강 잔물결이 푸르게 다가오고 잠시 흥얼거리다 보면 작은 도서관에 도착이다. 오늘은 어떤 일이 일어날까, 책을 펼치면 검은 글자들이 줄을 이어 어디로 갈까 누구를 어떻게 만날까, 낙타를 타고 사막으로 갈까 숲으로 갈까, 길을 찾아 나선 누구에게는 도서관은 언제나 희망적이다. 작은 도서관 주인인 고양이 두 마리가 무심하게 누운 자세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나의 자리를 차지한 고양이는 꿈쩍도 않고 눈을 맞춘다. 가까운 주민들이 손쉽게 책을 이용하고 하교하던 아이들에게 잠시 공부방이 되기도 하고 주민들의 쉼터 같은 역할이 되기도 하는 작은 도서관, 안타깝게도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작은 도서관에 역량 있는 지역의 작가들이 제대로 된 프로그램을 가지고 작은 도서관을 살렸으면 좋겠단 생각이다.


집 가까이 큰 도서관이 있다. 가끔씩 이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누가 오라고 하지 않아도 도서관은 구석까지 꽉 차 있다. 늦은 공부를 시작한 시인은 도서관이 사막처럼 보인다. 돋보기를 끼고 머리가 지끈거리며 들여다보는 작은 검은 벌레들이 무섭기도 하다. 글자들이 모래처럼 무너져 내리고, 사막을 횡단하는 탐험가가 되기도 하고, 내안의 풍경에 황사가 일고, 그래도 글자들의 의미를 찾아 나서는 시인의 의연함이 뚜벅뚜벅 행간마다 걷는다. 타박타박 낙타처럼 걸어가는 활자들, 길 잃으러 사막 간다. 길 버리러 사막 간다.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길이다. 시인의 길을 나도 따라 나선다.  한영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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