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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배우의 수상소감에 가슴이 뭉클해져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가슴 속에선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녀의 말처럼 위로가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나는 위로가 필요했나 보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 질 무렵 우러나는 오늘의 냄새. 어느 한 가지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당신은 이 모든 걸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살짝 떨리지만 여전히 힘 있는 목소리 그리고 또렷한 눈동자에서 그녀의 진심이 묻어났다. 그 노배우는 바로 김혜자였다. 드라마 대본을 찢어 나와서 수상소감을 말하는 그녀는 너무나 소녀 같았다. 그리고 그 여운은 너무나 오래갔다. 지금 내가 엄마이고, 누이이고, 딸이기 때문일 것이다. 

며칠 전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가 방송에 나와서 하는 인터뷰를 보았다. 치매에 걸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엄마를 위해 엄마가 좋아했던 노래들로 음반을 발매했다며 더 늦지 않게 노래를 불러 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이야기했다. 

아버지를 위해서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며 콘서트 일정으로 장례식도 참석하지 못했다고 했다. 일정을 취소하고 한국에 오고 싶었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관객들과의 약속을 지키라며 그녀를 만류했다고 했다.

그날 그녀는 콘서트를 끝내고 앵콜곡 시작 전에 "오늘은 아버지의 장례식이 있는 날입니다. 저는 오늘 여기서 아버지를 위하여 노래를 불렀습니다"라고 울먹이는 영상을 보았는데 그 일화 하나만을 보아도 그녀의 어머니가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짐작할 수 있었다. 

"엄마가 노래를 하고 싶으셨데요. 그런데 그러지 못하셨다고… 만약 우리 엄마가 어린 나이에 외국에 나와서 이렇게 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 일인 줄 알았다면 날 보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녀는 성악가를 목표로 키워졌고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그렇게 만들기 위해 혹독하게 훈련시켰다고 했다. 넌 나처럼 누군가의 여자, 엄마가 아닌 너로 살라고 항상 말씀하셨다며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정말로 어머니 말씀처럼 세계적인 프리마돈나가 되었고 그 누구도 아닌 그녀 자신으로 멋지게 살고 있다.

조수미의 '마더'라는 앨범 중에 '바람이 머무는 날(Kazabue:바람피리)' 이란 곡이 있는데 일본의 미치루 오시마 작곡의 오보에 곡에 가사를 붙힌 곡이다. 

'바람이 머무는 날엔 엄마 목소리 귀에 울려 헤어져 있어도 시간이 흘러도 어제처럼 한결같이 / 어둠이 깊어질 때면 엄마 얼굴을 그려보네 거울 앞에 서서 미소지으면 바라보는 모습 어쩜이리 닮았는지/ 함께 부르던 노래 축복 되고 갈이 걸었던 그 길 선물 같은 추억 되었네 바람 속에 들리는 그대 웃음소리 그리워'

노래를 듣다보니 우리 엄마도 생각나고 내가 어떤 엄마로 기억될지 딸들도 생각난다. "엄마,엄마,엄마,엄마!" 꼬맹이들의 끝없는 엄마 열창에 "제발 엄마 좀 그만 불러!" 하는 나의 외침에 옆에서 보고 있던 우리 엄마가 말한다. "놔둬라~ 크면 어디 엄마 찾디? 엄마 부를 날이 많지도 않다" 

엄마가 나에게 말한다. 엄마가 엄마에게 말한다. 우리 엄마는 매사에 참 열정적이고 본받을 점이 많다. 이렇게도 게으르고 부족한 나를 재주 있어 보이게끔 만들어 놓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난 우리 꼬맹이들에게 우리 엄마가 나에게 해준 것처럼은 하지 못할 것이라 늘 생각한다. 

받은 것은 많은데 그만큼 돌려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 엄마에게나 꼬맹이들에게나 늘 미안한 마음만 크다. 애들을 키우면서부터는 늘 빚쟁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늘 미안한 일들이 생기고 내가 가진 시간은 같은데 나의 역할은 갑자기 너무 많아져서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 

이번 생엔 '나'로만 살아가긴 어렵겠다. 하지만 노래를 들으며 '딸'로서 그리고 '엄마'로서 모두의 마음을 그려볼 수 있는 지금의 나를 좋아한다. 그렇게 오늘을 살아간다. 그래도 그렇게 행복하다. 엄마가 엄마에게 또 그다음의 엄마에게… 그녀들 모두가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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