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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찌푸린 주말, 열차에 몸을 실었다. 태화강역에서 해운대 센텀역까지 동해남부선의 열차는 생각보다 빠르고 편리했다. 아직 구간 곳곳에 건설의 삽질이 계속되고 있고, 사라진 철로와 새로 깔린 철로가 임무를 교대하는 모습이 소란스럽지만 이제 곧 복선전철의 시대가 현실화 될 것 같은 느낌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부산에 머물다 돌아오는 길에는 호기심에 호계역을 찾아가 보기로 하고 열차표를 바꿨다. 얼마 전 쇠부리 축제가 끝난 북구는 철의 도시다. 그 북구가 지금 요동을 치고 있다. 동해남부선 복선전철이 가시화 되면서 북구가 울산의 중심이 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 근거는 최근 몇 년 동안 벌어진 울산의 개발사업이다. 관이 주도하는 개발이 아니라 민간이 돈 냄새를 맡고 벌이고 있는 개발의 현장이 오늘의 북구와 내일의 북구를 그려내고 있다. 

그 첫 증좌가 주민들의 움직임이다. 울산시 북구 송정역(가칭) 광역전철 연장운행 추진위원회는 얼마 전 부산∼울산 태화강역으로 계획된 광역전철 노선을 부산∼울산 북구 송정역까지 연장해 달라는 내용의 주민 서명부를 청와대에 전달했다. 

추진위는 지난 3월 20일부터 범구민 서명 운동을 시작해 6만 7,168명(온라인 1만 1,914명·오프라인 5만 5,254명)의 서명을 받았다. 추진위는 당초 5월 말까지 북구 인구 20여만 명의 약 20%인 4만 명을 목표 인원으로 잡고 서명 운동을 추진했으나, 예정보다 한 달 정도 앞당겨 목표 인원을 달성했다. 

주민들이 주장하는 송정역 연장은 단순한 철도 노선 연장을 넘어 앞으로 전개될 울산과 부산 경주를 잇는 동해남부권의 교통지도를 흔드는 시발점이 된다. 부산 부전역에서 울산 태화강역까지 이어지는 동해남부선 복선전철화 사업은 총 65.7㎞ 구간으로, 2021년 3월 개통 예정이다. 동해남부선 복선전철 개통이 가시화되면서 지금까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던 동해남부권 개발의 청사진이 하나씩 벗겨지는 중이다. 

무엇보다 돈 냄새는 부산의 아파트 업자들이 먼저 맡았다. 수년전부터 북구 일대는 송정지구와 매곡지구 중산지구 등 도시개발 사업이 일어났고 수천 세대의 아파트가 봄날 죽순처럼 올라오면서 도시 밑그림이 완전히 달라졌다. 현대자동차가 위치한 지역적 특성이 있다고 하지만 갑작스럽게 늘어난 개발 사업은 한동안 많은 우려를 낳았다. 공급과잉으로 도시성장에 문제가 따를 것이라는 점부터 수천 세대의 인구인동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급기야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조선산업 침체 등으로 울산의 주택시장은 직격탄을 맞았고 분양시장은 얼어붙었다. 아파트 매매는 실종되고 거래가도 폭락을 거듭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그런데도 개발업자들은 또 짓는다. 폭락에 거래급감을 알면서도 다시 삽질을 하는 업자들은 뭘 믿고 있는 걸까.

호계역에 내려 매곡중산지구부터 송정역을 거쳐 송정지구를 돌아보며 섬뜩한 생각이 스쳐갔다. 웨스토피아를 외쳤던 몇 해 전 생각이 짧은 단견이었다는 자책이었다. 북구 무룡산과 동대산 아랫도리를 두르며 지나가는 동해남부선 복선전철을 보는 순간 아차 싶었다. 산 아래 허옇게 드러난 철도의 동맥은 단순한 동해남부선 낭만열차가 아니었다. 곧 철마가 달리게 될 그 철로는 울산과 부산은 물론 경주와 포항까지 동해남부권의 생활기반을 완전히 바꿀 대역사였다. 열차에 몸을 실어 체험 한 것처럼 복선전철의 개통은 두 도시를 직통 전철권으로 연결하게 된다. 도시의 경계가 사라진다는 의미다. 

동해남부선 아래쪽인 일광 일대와 위쪽인 울산북구에 매달린 아파트 업자들의 삽질은 그냥 질러보는 사업이 아니었다. 동해남부선이 완성되고 광역철도의 밑그림이 그려지는 시간을 분초 단위로 계산한 업자들의 전쟁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송정역을 기점으로 신경주와 연결망이 뚫리는 시점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신경주는 이제 교통의 요충지가 됐다. KTX를 울산역과 부산으로 보내는 동시에 새로운 고속철도를 송정과 포항, 해운대로 보내는 교차점이 되는 셈이다. 소설이 아니다. 이미 한국철도시설공단은 이 그림을 그려놓고 국토의 동남쪽과 서울, 더 나아가 북한을 잇는 대륙철도를 구상하고 있다.

철도공단이 1조 4,000억 원을 투입해 건설중인 부산 일광역~울산 태화강역 동해남부선 복선전철 공정률은 현재 75% 정도로 2021년 3월 개통 예정이다. 일광~좌천~월내~서생~남창~망양~덕하~선암~울산태화강 37.2㎞을 잇는 이 구간이 개통될 경우 일광(부산)과 태화강(울산)은 33분 30초에 연결된다. 부산 외곽서 부산 도심으로 접근하는 일광~부전역(37분)보다 시간이 더 짧다. 8개 역사 가운데 좌천·월내·남창·덕하·태화강역사는 현 위치에 확장 신축되며 서생·망양·선암역은 신설된다. 2016년 12월 30일 개통된 동해남부선 부산~울산 복선전철 1단계인 부전~일광(28.5㎞)구간이 버스로 1시간 40분 걸리던 것을 37분으로 단축시켜 교통혁신을 가져 온 데 이어 울산~부산이 전철로 연결되는 교통혁명이 일어나는 셈이다.

문제는 울산이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길이 뚫리면 사람과 물자의 이동은 필연이다. 이미 3년째 인구의 유출이 이어지는 울산으로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악재만 쌓이게 된다. 지금의 상황이라면 어떤 것도 울산에게 호재가 되는 상황이 아니다. 부산은 이미 해운대 자락에 동아시아 최대의 위락단지와 쇼핑시설을 짓고 있는 중이고 경주는 신경주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도시개발에 나선 상황이다. 

일광을 중심으로 한 동부산권일대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연일 최고층을 갈아치우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고 있다. 인구 8만3,000명을 수용하고 있는 정관신도시에 이어 내년 입주가 시작되는 일광신도시와 장안지구택지가 분양을 준비 중이다. 기장군 일광면 삼성ㆍ이천ㆍ횡계리 일대 총 123만 9,000㎡ 부지에 도시개발사업으로 조성되는 일광신도시는 내년 개발이 완료되면 총 9,654가구, 2만 5,000여 명을 수용한다. 당연히 울산시민들을 유입하려는 목적이다. 외곽순환도로와 트랩 등 교통 편의도 국비지원으로 착착 진행 중이다.

사정이 이렇지만 울산은 여전히 남의 동네 이야기라는 반응이다. 당장 급한 일이 아니라는 인식인 듯하다. 딱한 일이다. 사람이 빠져나가고 주력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흐름을 읽지 못하고 있다. 전국 최고의 실업률, 전국 최고의 집값 하락, 지속적인 인구유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감도 잡지 못하는 눈치다. 

지금부터 당장 서둘러야 한다. 기업이 투자를 미룬다고 암묵적으로 묵인해온 해묵은 불법을 언론에 흘리고 시민단체 앞세워 재벌타도를 외친다고 영업이익의 셈법으로 주판을 튕기는 기업의 주머니를 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돌아와 그대, 내게 돌아와"라며 태화강 정원에 스피커를 동원해 볼륨을 올린다고 떠나간 시민들이 돌아오지 않는다. 문제는 밑그림이다. 어디서부터 어떤 식으로 울산의 미래를 그려낼 것인지를 제대로 판을 펼쳐 다시 그려야 한다. 

태화강역에 복합환승센터가 생기고 광역철도의 거점역이 된다면 울산의 교통지도는 완전히 달라진다. 울산 동구와 북구, 남구, 중구 주민들은 태화강역을 통해 서울로 가게 된다. KTX 울산역이 개통되는 시간부터 울산에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동해남부의 변방에 있던 울산이 고속철도와 함께 내륙 생활권의 축으로 편입됐고 기차표 하나로 전국의 대부분 도시들과 반나절 생활권으로 묶였다. 

1,000년 전 한반도 유일의 국제 무역항으로 시작한 해양문화권과의 네트워크가 대륙문화권으로 확장하는 엄청난 계기가 마련됐다. 이제 그 시작이 보다 구체화되어 내륙 깊숙이 도심의 역에서 대륙으로 향하는 이동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당장 지금부터 이 그림을 바탕으로 새로운 울산을 그려야 한다. 더 늦어지면 자멸하게 된다. 바다 위의 풍력이든 수소시대든 사람이 모이지 않으면 그냥 물적 자원에 불과하다. 불을 켜고 동력을 사용하는 일은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회사후소, 바탕을 제대로 칠해 놓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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