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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유난히 밝아 오랜만에 학성공원에 산책을 나섰다. 1928년 문을 연 학성공원은 울산대공원이 생기기 전까지 울산시민이 즐겨 찾는 도심의 유일한 공원이었다. 예전에 이곳은 아이들이 소풍오고, 연인들은 데이트하고, 가족들이 나들이 하던 장소였다. 봄이면 벚꽃이 무리지어 피어나 공원 전체를 덮어 아름다운 장관이 펼쳐진다. 그리고 사철 푸른 흑송이 만들어주는 그늘은 여름과 가을에도 안성맞춤이다. 또한 겨울이면 동백이 피고 떨어져 그 모습도 아름다워 모든 계절에 찾을 만한 공원이다. 


학성공원은 일제강점기 때 중구의 부자였던 김홍조 어르신이 이곳에 여러 종류의 나무를 심어 울산군에 기증하면서 탄생했다. 오래된 흑송과 벚나무를 보면 그 연륜이 짐작된다. 최근에 공원을 정비하여 깨끗해진 이곳엔 동백꽃길이 많이 만들어져 있었다. 울산 중구의 구화가 벚꽃에서 울산동백으로 바뀌면서 동백꽃 길을 만든 것 같다. 동백숲길을 따라 정상에 오르니 고이 자물쇠까지 채워 보호하는 동백이 있어 특이하게 느껴졌다. 이 동백은 425여 년 전 일본으로 갔다가 귀향한 울산동백으로 깊은 사연이 숨어있었다.


임진왜란 때 울산에 왔던 가토 기요마사는 한 나무에 여러 색깔의 꽃이 피면서 한 잎씩 춤추듯이 떨어지는 울산동백을 보고 너무 신기하고 아름다워 일본으로 가져가 토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바쳤고,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평소 함께 다도를 즐기던 교토의 지장원 주지에게 헌목했다. 지장원에서 울산동백은 400년을 살다 죽었다고 한다. 그러나 울산동백은 고향을 그리며 마지막 혼신을 다한 듯, 죽은 그루터기에서 2세목들이 10여 그루 살아나 지장원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다. 동백꽃의 아름다움으로 절의 별칭이 춘사(동백절)로 불린다고 하니 그 고운 자태가 짐작된다.


1989년 교토 지장원을 찾은 예총 울산지부장인 최종두씨가 지장원에서 울산동백을 발견한 뒤 부산 자비사 삼중스님과 부산여대 교수님 두 분이 노력을 더해 3세목 2그루가 1992년 5월 귀향 했다. 한 그루는 독립기념관에 심어졌으나 기후가 맞지 않아 고사했고, 울산시청 초록원에 심어진 한 그루는 시민의 사랑 덕분으로 이른 봄이면 화사한 꽃을 피워내며 잘 자라고 있다. 평소에 나는 통꽃으로 떨어지는 동백을 보면서 나무에서 한번 피고 땅위에서 다시 피고 우리들 가슴에도 피는 꽃이라 생각하며 나름 신기해했는데 일본인들은 기피한다고 한다.

특히 사무라이들은 목이 베어지는 참수에 비유되어 불길의 징조로 여겨져 집안에 심지 않았고 병문안 때도 가져가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사무라이 문화 속에서 살아온 가토 기요마사가 한 잎씩 떨어지는 울산동백을 만났을 때 얼마나 신기해하고 좋아했을지 짐작이 간다. 한 동안 울산동백인 오색팔중산춘은 울산에서 자취를 감췄는데 일본인에 의해 남획되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울산 중구는 2015년 광복70주년을 맞이하여 울산동백 몇 그루를 일본에서 기증받아 학성공원과 중구청에 식재했다. 보호장치를 하는 등 귀하게 대접하고 있다. 울산동백이 학성공원(울산왜성)에 자리한 건 울산 중구의 역사성과 맞아떨어져 더욱 빛이 발할 것 같다.


요즘 나라 안팎으로 시끄러워 우리 국민들의 단결된 정신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나라사랑으로 구심점을 만들어 단결해야할 시점에 일본에서 425여년 만에 귀향한 울산동백이 구심점이 될 수 있다. 울산동백으로 연결된 역사의 접점들 속에 정유재란 도산성 전투에서 치열하게 싸운 울산사람의 나라사랑 정신과 김홍조 어르신의 울산사랑 정신이 학성공원에 있다. 울산사랑과 나라사랑 정신이 모아진 현장이 바로 이곳이다.


지난 2019년 3월1일부터 울산시 문화관광해설사들이 주재하여 역사 해설을 하고 있어 많은 시민들이 찾아와 나라사랑의 정신을 키우고 있다. 울산동백의 귀환은 여러 가지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 다시 환영하고 중구의 구화 선정에 그 의미를 다시 새겨본다. 울산동백 오색팔중산춘의 고향인 울산 학성공원(울산왜성)에서 무럭무럭 자라 탐스러운 꽃을 지천으로 피우며 하늘하늘 춤사위를 벌이는 날을 기대하면서 지나간 우리 울산의 질곡어린 역사를 반추하며 선조들의 나라사랑을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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