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사하맨션 조남주 지음·민음사·372쪽    '82년생 김지영'으로 한국 사회 젠더감수성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 조남주 작가가 장편소설 '사하맨션'으로 돌아왔다. '82년생 김지영'이 경력단절여성의 절망감을 통해 성차별의 현재와 현실을 기록했다면 '사하맨션'은 발전과 성장이 끌어안지 않는 거부당한 사람들의 절망감을 통해 소외된 삶의 현재와 미래를 상상한다.
 기업의 인수로 탄생한 기묘한 도시국가와 그 안에 위치한 퇴락한 맨션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하맨션'은 국가 시스템 밖에 놓인 난민들의 공동체를 그린다. 30년 동안 맨션을 찾은 사람들은 국가로부터 '반품'됐거나 '반입'조차 불가한 사람들, 거부당한 그들은 '사하'라고 불린다. 작가는 이들의 삶에 드리운 그늘을 섬세하게 관찰하며 시장의 논리가 공공의 영역을 장악한 미래를 조심스럽게 예언한다.
 

# 모든 권력은 간신을 원한다 이성주 지음·추수밭·276쪽    정치적 이슈마다 불려나오는 단어가 있다. 바로 간신이다. 간신의 사전적 정의는 '군주의 눈을 흐려 국정을 뒤에서 농단하는 간사한 신하'다. 언제나 격동 중인 정치의 역사는 이러한 간신들의 연대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그래서 동아시아 사회에서는 간신을 경계하고자 하는 이른바 '변간법'이 일찍부터 체계화돼왔고 정교하게 다듬어져 왔다.
 저자인 이성주 작가는 "왜 간신은 사라지지 않을까?"라는 익숙하고 오래된 질문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무수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간신을 솎아낼 수 없었다면 전제부터 바꿔볼 필요가 있다. 바로 '간신들은 조직에서 어떤 쓸모를 인정받았기 때문에 역사에서 사라질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의 전환이다. 이 책은 이러한 가설을 바탕으로 조선 건국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의 대표 간신 9인의 역사를 통해 권력과 조직의 속성을 파헤친 결과를 소개한다.
 

# 다시 책으로 매리언 울프 지음·어크로스·360쪽    인간이 읽는 능력을 타고나지 않았으며, 문해력은 호모사피엔스의 가장 중요한 후천적 성취 가운데 하나임을 강조해 온 저자. 그는 하루에 6~7시간씩 디지털 매체에 빠져 있는 청소년들을 목격하면서 그들 뇌의 읽기 회로가 어떻게 변형될 수 있는지를 탐색하기 시작했고, 연구 조사 결과 다양한 최신 자료들을 인용하며 오늘날 우리의 읽기 방식이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디지털 세계의 엄청난 정보들은 새로움과 편리함을 가져다준 대신 주의집중과 깊이 있는 사고를 거두어갔다. 그중에서도 특히 '깊이 읽기'의 능력을 상실해가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깊이 읽기' 능력을 영영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긴급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며, 오늘날 기술이 읽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것이 인류의 미래에는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빛나는 통찰을 제공한다.
 

#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 김민식 지음·위즈덤하우스·300쪽    김민식 PD의 30여 년의 여행 이야기 중 정수만을 뽑아낸 책. 저자는 산티아고를 꿈꾸지만 현실이 여의치 않을 땐 동네 뒷산이라도 매일 걸으며 자신을 단련시켰고, 어려서 미워했던 아버지와 화해하기 위한 방법으로 아버지와 단둘이 여행을 떠났고, 스무 살 달렸던 자전거 종주의 설렘을 생각하며 나이 50에 다시 자전거 전국 일주를 떠났다.
 하고 싶은 게 많아서 매일 매일이 즐겁다는 김민식 PD는 20대의 위기는 영어로, 30대의 위기는 글쓰기로, 40대의 위기는 여행으로 극복했고, 현재의 '재미주의자' 김민식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여행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은 아니다. 동네 뒷산부터 아시아, 유럽, 미국, 아프리카까지 안 가본 데 빼고 다 가본 저자는 '되는지 안 되는지 떠나보기 전에는 모른다'라는 생각으로 발길이 닿는 곳 어디든 떠난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망설여졌던 삶에서 '일단 직진' 해보는 삶을 제시한다.
 강현주기자 uskhj@ulsanpress.net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