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구 침입 방어하던 울산 경상좌도 병영성
왜구 침입 방어하던 울산 경상좌도 병영성
  • 강현주
  • 승인 2019.05.30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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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지 주변 발굴조사전 상태.
동문지 주변 발굴조사전 상태.

울산 중구 서동 149-8번지 일원에 위치한 사적 제320호 '울산 경상좌도 병영성'. 이곳은 조선 시대 때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낙동강 이동 지역의 동남해안을 방어하기 위해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가 머물던 성이다.

#동천과 태화강 만나는 포곡식성
'경상좌도 병마도절제사영성'을 줄인 말로, 2011년 '울산 병영성'에서 '울산 경상좌도 병영성'으로 명칭변경 됐다. 동천과 태화강이 만나는 안쪽에 위치한 병영성은 함월산 동쪽 해발 30~50곒지점에 계곡을 가운데 두고 좌우 능선을 이용해 쌓은 포곡식성(抱谷式城)이다. 1417년(태종 17)에 경주에 있던 좌병영을 이곳으로 옮겨와 쌓았다.

이후 1426년(세종 8)에 좌병영을 창원으로 옮기고 울산에는 진(鎭)을 두었으나, 1437년(세종 19) 도호부로 승격하면서 다시 좌병영을 설치했다. 정유재란 시기에는 왜군이 병영성 및 울산읍성의 성벽을 헐어다가 울산왜성을 축조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실제 서쪽 성벽 발굴조사에서 많은 성벽이 유실됐음이 밝혀졌다. 이후 1895년(고종 32)군제 개편으로 그 기능이 사라졌다가, 1900년 지방에 진위대가 설치되면서 진위대 제3연대 제3대대가 배치되기도 했다. 그러나 1907년 군대가 해산되면서 군사적 기능을 완전히 잃게 됐다.

#4개성문 문루와 옹성 갖춰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등의 기록을 통해 사방 4개의 성문에는 모두 3칸 규모의 문루와 옹성을 갖추고 있었으며, 성벽 곳곳에는 치성(雉城)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성벽에서 약 10~15곒 바깥으로 방어시설의 일종인 해자를 설치했다. 성내 시설로는 병마절도사 공관은 체오헌, 객사인 선위각(宣威閣), 객사 정문인 진해루(鎭海樓), 우후(虞侯) 공관인 찬주헌(贊籌軒) 등의 주요 건물이 있었다. 부속 건물로는 무기와 군수물자를 보관한 창고 등이 있었고, 연못 3개와 우물 7개가 있었다.

성의 외벽은 큰 깬 돌로 쌓아올리고 안쪽에는 작은 돌로 채웠으며, 간혹 길이가 긴 성돌을 중간에 걸쳐 놓아 바깥 성벽이 무너져도 그 안쪽의 성벽이 붕괴되지 않도록 했다. 내벽은 외벽보다 작은 돌로 쌓았으며, 성벽의 너비는 약 7곒정도 이다. 지금까지 성벽의 일부구간, 성의 북문지와 서문지, 일부 건물지(객사 정문인 진해루) 등의 발굴 조사가 이뤄졌으며, 현재 지속적인 정비가 이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