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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물건이 나가지 않을 때는 역마진을 각오하고 초저가 행사도 해보는데, 매장만 일시적으로 붐빌 뿐 실제 매출은 전혀 오르지 않는다. 꼭 필요한 생필품이 아니면 제때 팔리지 않아 재고가 되기 십상이다보니 할인에 할인을 거듭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울산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A씨는 올해까지 20여 년을 동종업계에 종사해왔지만 요즘 처럼 판매 단가가 떨어진 적은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울산이 이처럼 극심한 내수부진에 시달리면서 소비자 물가가 전국에서 유일하게 하락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채솟값이 급락했고, 집세와 공공서비스 등 서비스물가가 모조리 다 하락했다. 가뜩이나 전국적으로 경기부진에 따른 '저(低)물가'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울산이 전체 물가를 지속적으로 끌어내리자 '울산발 디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 농산물·석유 등 모조리 급락
동남지방통계청이 4일 발표한 '울산시 5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지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03.74(2015년=100)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0.3% 하락했다. 소비자 물가가 내린 지역은 전국에서 울산이 유일하다. 울산의 소비자물가는 올해 2월(-0.4%) 통계가 작성된 1990년 이후 처음 떨어진 데 이어 4개월 연속 곤두박질 쳤다.


 지난해 폭염·가뭄으로 급등했던 채소류 가격이 떨어지면서 전체 물가를 끌어내렸다. 특히 무(-51.9%), 감자(-28.1%), 배추(-27.1%), 딸기(-13.5%), 참외(-11.5%) 등이 크게 하락하면서 농산물은 5.6%나 주저 앉았다.


 공업제품도 0.2% 떨어지며 올들어 5개월째 하락세를 이어갔다.
 이 가운데 석유류는 2.1%나 급락했다.  5월초 정부가 유류세 인하폭을 절반으로 축소하고, 국제유가가 상승세를 보였음에도 석유류의 물가는 급락했다. 


 서비스 물가도 0.2% 하락해 전체 물가를 0.09%p 끌어 내렸다.
 집세와 공공서비스가 1년 전보다 각각 2.3%, 0.4% 떨어졌으며, 개인서비스는 0.3% 올랐다.
 공공서비스는 버스와 택시요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통신비 감면, 건강보험 적용 확대 등으로 하락세가 이어졌다.


 이로 인해 체감물가를 보여주기 위해 자주 구입하고 지출 비중이 큰 141개 품목을 토대로 작성한 '생활물가지수'는 지난해 5월 대비 0.4% 하락했다.
 어류·조개·채소·과실 등 기상 조건이나 계절에 따라 가격 변동이 큰 50개 품목을 기준으로 한 '신선식품지수'는 1년 전보다 6.7% 내렸다.

# 전국 5개월 연속 0%대
울산은 전국 물가를 끌어내리고 있다.
 전국적으로 지난달 물가는 전년 같은 달보다 0.7% 오르는 데 그쳤다. 올해 들어 5개월 연속 0%대다.
 지난해 연간 1.5%였던 물가 상승률은 올 1월 0.8%로 떨어진 데 이어 2월(0.5%)→3월(0.4%)→4월(0.6%)→5월(0.7%) 0%대로 눌러앉았다. 물가 상승률이 5개월 연속 0%대를 유지한 건 2015년 2월∼11월(10개월) 이후 처음이다.

전국적인 저물가 기조에 울산이 하방압력을 가하면서 '울산발 디스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디플레이션은 단순 저물가가 아니라 '경기 침체와 맞물린' 지속적인 물가 하락을 뜻한다.
경제가 활기를 띠면서 물가가 안정세를 보인다면 바람직하지만, 현재 저물가 기조는 이와 다르다.
경제 활력이 떨어지면서 민간 소비와 기업 투자 등 내수 부문 총수요가 크게 위축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라서다.

# 주력산업 침체 무역 흑자폭도 반토막
디플레이션 진단의 가장 중요한 잣대는 물가다. 저물가가 지속되면 기업의 임금상승률이 하락하는 동시에 가계의 소비여력이 떨어지고, 투자가 감소하는 등 경제가 후퇴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울산의 각종 경제 지표에는 이같은 징조가 드러나고 있다.


지속되는 주력 산업 침체 여파로 지역의 소비와 투자는 동반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조선, 자동차를 중심으로 긴 불황을 겪어온 울산 제조업의 경우 지난달 생산이 늘어났지만 제때 출고가 되지 않아 재고가 9개월 째 증가했다. 무역수지 흑자폭도 반토막이 났다. 지난 울산의 수출은 두자릿수 증가를 이어갔지만 정작 흑자폭은 18억8,000만달러에 그치며 전달(35억100만 달러)의 절반에 머물렀다.


이는 소비 부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역 대형소매점 판매는 백화점(-4.5%) 및 대형마트(-7.2%)에서 각각 줄어 지난해 동월 대비 5.7% 감소했다.
소매판매는 지난해 4월부터 감소세를 이어가다 올해 1월 1.6% 증가했지만, 2월부터 다시 내리막길을 걸었다. 전달인 3월에 0.3% 줄어든 것보다 감소폭이 확대됐다.


투자도 감소세로 전환했다.
지난달 건설수주액은 1,112억원으로 건축(-77.8%) 및 토목(-28.1%)에서 각각 줄어 지난해 동월 대비 72.4% 감소했다.


통계청 관계자 "석유류 가격이 (작년보다) 하락했고 내수 부진과 무상교육 확대 영향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며 "유류세 인하 폭 축소와 국제유가 상승으로 전월보다는 상승했다"면서 "유류세 인하 폭 축소가 없었다면 소비자물가가 0.1∼0.15%p 더 낮았을 것"이라며 "작년 폭염이 있었지만, 올해는 날이 따뜻해 농축산물 가격이 안정됐다"고 부연했다. 하주화기자 usjh@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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