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뉴브, 혹은 도나우강
다뉴브, 혹은 도나우강
  • 울산신문
  • 승인 2019.06.06 23: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진영 편집이사 겸 국장

허블레아니호는 지난달 29일 오후 9시5분쯤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머르기트 다리 인근에서 크루즈선 '바이킹 시긴'호에 들이받혀 순식간에 침몰했다. 이날 이후 우리에게 다뉴브강은 비극의 강이자 고통의 강으로 각인되고 있다. 하지만 다뉴브강은 이미 오래 전부터 비극의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유유히 흐르고 있다. 유람선 침몰 지점의 바로 위에 놓인 머르기트 다리는 부다페스트의 화려한 다뉴브 강변 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고, 도심의 휴식처인 머르기트 섬을 연결해 유동 인구가 많은 명소지만, 이번 참사 이전에도 2차대전 당시 수백명의 인명이 희생된 슬픈 역사를 품고 있다.


1944년 11월 4일 머르기트 다리에서는 나치 독일군의 모의폭파 훈련이 잘못돼 다리의 동쪽 교각이 완파되면서 수백명의 인명이 희생되는 참사가 있었다. 이날은 헝가리의 파시스트 정당인 '화살십자당'의 당수 살러시 페렌츠의 총리 취임식이 있던 날이었고, 토요일이라 머르기트 다리는 평소보다 더 많은 보행자와 차량으로 붐볐다. 이날도 부다페스트 남동쪽 100㎞ 지점에서는 독일군과 소련군이 치열한 포격전을 벌이고 있었고, 일부 소련군은 부다페스트 외곽까지 진격한 상태였다. 독일의 패색이 짙어가던 무렵이었지만 파시스트 정권 치하의 헝가리는 나치의 편에서 최후의 항전을 결의했던 시점이다. 헝가리 공병대는 11월 초에 머르기트 다리에 대량의 폭탄을 설치했다.


여전히 규명되지 않은 원인으로 인해 다리 동쪽 부분이 완전히 파괴되는 대참사로 이어지고 말았다. 독일군이 민간인 출입을 통제하지도 않고 벌인 폭파훈련이 잘못되면서 다리 위에 있던 100∼600명의 폴란드인과 40여명의 독일군이 그 자리에서 폭사했다. 하지만 머르기트 다리 폭발 참사는 비극의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이 사건이 있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부다페스트는 퇴각하는 독일군과 진격하는 소련군이 벌인 102일간의 공방전으로 초토화되다시피 했고, 특히 독일군은 후퇴하면서 부다페스트를 흐르는 아름다운 다뉴브강 위의 교량 전부를 폭파해버렸다.


이같은 비극의 역사와 달리 우리에게 다뉴브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다뉴브강)'이란 명곡으로 더 유명하다. '왈츠의 왕'이라는 요한은 헝가리 쪽 다뉴브 강이 아닌 오스트리아 쪽의 도나우강을 배경을 한다. 요한이 활동 당시 오스트리아는 프로이센과 전쟁을 했는데, 불과 7주 만에 패하고 말았다. 독일 통일을 준비한 프로이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와 참모총장 몰트케의 탁월한 전략에 오스트리아는 상대가 되지 못했다. 패전 후에 나라 전체가 실의에 빠지자 빈의 남성합창단에서는 쾌활하면서도 애국적인 곡을 공연하기로 하고 요한 슈트라우스 2세에게 작곡을 의뢰하게 된다. 그 때 탄생한 곡이 바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다.


바로 그 강에서 이번에는 아리랑이 울려퍼졌다. 헝가리인들은 지난 3일(현지시각) 오후 7시 다뉴브강 머르기트 다리에 하나씩 모여 들었고 주최측이 나눠준 아리랑의 악보를 들고 손에 손을 잡고 아리랑을 불렀다. 구슬프고 한 맺힌 아리랑 노래가락이 다뉴브 물결에 일렁 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