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전기 서생포 방비하던 만호진성
조선시대 전기 서생포 방비하던 만호진성
  • 강현주
  • 승인 2019.06.0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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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물 제35호 서생포 만호진성 주변 전경.
기념물 제35호 서생포 만호진성 주변 전경.

울주 서생면 화정리 산68 일원에 위치한 울산시 기념물 제35호 서생포 만호진성(西生浦 萬戶鎭城).

# 병선 20척·군졸 700여명 상주
조선시대 전기 울산에는 서생포 만호진성, 염포진성, 개운포진성 등 세 곳의 수군진성(水軍鎭城)이 있었다. 진성(鎭城)은 국경 및 해안지대 등 국방상 중요한 곳에 쌓은 군사적 성격의 성이다.
서생포 만호진성에 대해 『조선왕조실록』『세종실록지리지』 등에는 '울산읍성을 밖에서 보호하는데, 만호는 3품이며 병선 20척, 군졸 767명이 성에 상주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이러한 문헌기록을 참고할 때 축성 시기는 조선 초기일 것으로 추측된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왜군에 의해 함락돼 폐성됐다가 정유재란이 이후에는 서생포왜성으로 진을 옮겨 1895년까지 수군(水軍)의 동첨절제사영(同僉節制使營)으로 유지됐다. 서생포 만포진성은 북쪽으로는 회야강이 동쪽으로 흘러 바다와 합류되고 있어 수군이 활동하기 유리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성은 구릉의 말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구릉의 경사면과 평지를 연결해 축조한 포곡식(包谷式) 성이다. 성벽의 길이는 440m정도로 남아 있으며, 평면 형태는 평지에 해당되는 성곽이 멸실됐기 때문에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지만 말각 방형에 가까운 형태일 것으로 추정된다.

# 구릉 경사면과 평지 연결한 포곡식성
현재는 곳곳에 성벽의 기초석 일부가 남아 있는데 이는 임진왜란 시기 왜군이 서생포성을 쌓기 위해 성돌을 빼갔기 때문으로 보인다. 성벽은 장대석을 가로눕혀 지대석으로 삼고 그 위에 대형의 석재로 기단석을 쌓았는데 상부로 갈수록 이보다 작은 돌로 면을 맞춰 쌓았다. 내부는 소형의 할석으로 뒤를 채워 마무리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서쪽에 문지로 보이는 시설 일부가 잔존하지만 수군진성이라 주 출입시설은 회야강과 바다 쪽으로 용이하게 왕래할 수 있는 북동쪽에 위치했을 가능성이 높다. 성벽 너비는 4m정도, 잔존높이는 1~1.5m정도다.


발굴조사에서 돌로 양벽을 쌓은 원 해자와 개축 또는 보수된 2차 해자가 확인됐다. 해자는 적의 침입을 1차적으로 방어하는 목적으로 쌓았으나, 동시에 산사면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성벽을 훼손하지 않도록 외측으로 돌리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1차 해자의 너비는 약 3.5m 이며 2차 해자의 너비는 3.7m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