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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중구의 최대 축제인 마두희축제가 지난 주말 열렸다. 마두희는 조선 시대 울산 큰 줄다리기로 1900년대 초까지 열리다가 일제강점기 주민 모임이 통제되면서 명맥이 끊겼다. 울산 중구는 2012년부터 전통을 되살리고, 주민 화합을 위해 마두희를 재연하고 있다. 올해 축제는 그동안 원도심과 태화강변에 분산됐던 프로그램을 원도심에 집중하고 키즈존과 사진관 등을 마련해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도록 좀 더 축제의 영역을 확장했다. 또 도로마다 가림막과 쉼터 등을 마련해 휴식 같은 축제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세심함도 돋보였다. 

울산의 6월은 축제의 계절이다. 지난 주말은 고래축제가 열렸고 얼마 전에는 장미 축제도 끝났다. 5월부터 시작된 각 지자체의 축제는 지역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차별화된 잔치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 가운데 단연 돋보였던 것은 중구가 전국 축제로 판을 벌인 울산마두희축제다. 중구가 울산의 원도심이라는 자부심과 역사성을 바탕으로 한 중구만의 자존감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요란한 과대포장을 지양하고 마두희라는 오래된 옛것을 기본으로 오늘의 거리문화 콘텐츠를 접목시킨 작업이 마두희 축제다. 종갓집이라는 전통성을 부각하면서 몇 해 전부터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구시가지 골목골목과 거리 곳곳을 전통과 현대의 융합에 몰두했다.

몇 해 전부터 전국의 지자체들이 추진해오고 있는 지역 축제를 들여다보면 성공적인 사례와 함께 실패한 사례의 경계가 분명해진다. 그 갈림길의 핵심은 옛것을 오늘의 현장으로 드러내는 작업에 있다. 없는 것을 만들고 있는 것을 부정하는 작업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없는 춘향이를 만들어 내고 없는 논개나 흥부를 억지스럽게 끌어들인 지자체의 축제는 한 번의 이벤트로 사라졌다. 근본이 없고 중심을 잡아줄 역사성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사라졌지만 오래된 우리 것을 찾아내고 이를 다듬어 오늘의 옷을 입히는 작업은 그래서 유용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바로 그 지점에 울산 마두희 축제가 있다. 

마두희 축제는 300년이라는 역사성을 가진 축제다. 거슬러보면 울산이라는 지역의 큰 줄다리기 행사였던 마두희지만 일제강점기에 명맥이 끊긴 우리의 근현대사와 맥을 같이해온 우리의 놀이였다. 

울산의 오래된 줄다리기 놀이는 그 이름도 특별하다. 낯선 이름 마두희는 울산 최초의 읍지인 학성지에 족보를 드러내고 있다. 동대산이 바다로 빠져드는 형세가 말머리같이 생겼다는 데서 기인한 '마두'와 그 마두가 마을을 등진 채 바다로 달려나가는 모습을 놀이로 돌려놓겠다는 발상이 신선하다. 말이 머리를 동해로 두고 마을의 기운을 뺏어갈지도 모른다는 불안 심리는 지역민을 하나로 모이게 했고 굵고 질긴 짚단을 끈으로 엮어 줄다리기의 대동놀이로 말의 기운을 다시 끌어들인다는 발상이 마두희였다. 

우리 민족다운 발상이다. 어찌할 수 없는 재앙을 두고 수용과 관용의 미학으로 역신을 다스린 처용의 춤사위나 거대한 자연의 기운을 대동의 힘으로 끌어당겨 한곳에 응집해 보려는 마두희의 발상은 놀랍게도 닮았다. 

여기서 하나 짚어볼 문제는 바로 '마두희'에 대한 명칭 문제다. 마두희라는 이름이 학성지에 나오고 300년의 전통을 가진 이름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1936년 이후 명맥이 끊긴 마두희가 다시 살아난 것은 오늘의 사람들이 옛것을 찾아 그 의미를 살린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문제는 옛것을 찾아 오늘의 문화로 만들어 내는 것이 반드시 옛 이름과 형식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중구는 울산의 종가다. 종가는 그냥 오래된 고을이기에 종가가 아니다. 울산을 울산이게 하고 울산을 내일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의 원천이 중구에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중심에는 1,000년 전 울산이 세계와 소통했던 국제무역항이었고 통일신라의 거점이었다는 사실로 입증된다. 무엇보다 울산은 외솔 최현배 선생의 고향이자 대한독립군 총사령으로 일제에 정면으로 맞서 대한 남아의 기개를 높인 박상진 장군의 얼이 서린 곳이다. 

전통을 축제에 낯선 이름 '마두희'를 '말놀이'나 '말몰이'로 변용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말의 머리를 한자식으로 불러 마두희라 했다면 그것은 조선의 지배계급이 지은 이름일 것으로 추측된다. 민초들은 말몰이로 불렀을 가능성이 높다. 줄다리기의 동군은 두루마기를 입고 서군은 치마나 저고리를 나타내는 복장을 착용하는 것도 전통적 복식과 우리 것의 재현이라는 측면에서 권장할 일이다. 

왜색 가득한 외줄 승부가 아닌 두 마리 말이 합일점을 찾아 새로운 기운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말몰이, 혹은 말놀이 축제의 완성판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구가 올해부터 마두희 보다 '큰줄당기기'를 축제의 이름으로 앞세운 것은 잘한 일이다. 이왕이면 큰줄당기기가 말머리를 당기는 '말머리 큰줄당기기'로 정착되기를 희망해 본다. 중구는 외솔 최현배 선생의 고향이다. 우리말을 축제의 간판으로 걸고 정체성을 구현해 내는 일은 자랑스러운 울산의 역사를 재현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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