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에서 숭례문 거쳐 광화문까지
서울역에서 숭례문 거쳐 광화문까지
  • 울산신문
  • 승인 2019.06.11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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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문 한동대 교수

오랜만에 서울 갈 일이 생겨 KTX를 타고 서울역에 내렸고 광화문 인근에 약속장소가 있어 우선 숭례문 쪽으로 걷기로 했다. 

KTX 역사와 롯데아울렛을 지나면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고 이제는 박물관으로 변한 구서울역이 나타난다. 광장은 깔끔한듯하면서도 퀴퀴한 냄새가 난다. 이 근처 남대문지하도는 건설된 지 60년은 넘었을 것인데 오래전부터 노숙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도 했다. 물론 이곳을 지나는 국내외 관광객들도 적지 않다. 

지하도를 지나 숭례문 쪽으로 좀 걷자 사람들이 많아지고, 건물들도 멋있어지고, 약간 더운 날씨인데도 대형 건물들 앞 넓은 정원의 수목들을 타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그리고 숭례문이다. 매번 차를 타고 그 앞을 지났는데 그 앞에 직접 서 본 것은 불타고 복구된 후 처음이다. 그러나 바라보기에도 사진을 찍기에도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이게 웬일인가? 숭례문이 건물 자체는 복원이 되었지만 성곽은 오른쪽으로만 좀 길게 복원되고 왼쪽은 잘룩 잘리어 있다. 번화가 교통소통 문제 때문이라고 하겠지만 이것은 너무 한 것이다. 

인근 도로와 광장을 넓힌다고 해도 숭례문을 먼저 생각해야지 누가 이 어색한 구도에 감흥을 느낄 것인가? 홍보사진들을 보면 중심이나 왼쪽이 아닌 오른쪽에서 사진을 찍어 그 불균형을 보여주지 않으려 노력한 듯하다. 숭례문이 불탔다 해도 거대한 건물 위치를 조금이라도 변경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양옆의 성벽은 양쪽 균형을 맞춰 복원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도로를 좀 더 왼쪽으로 틀거나, 하다못해 성곽 밑으로 지나가더라도. 물론 왼편에 공간이 없어 보이지도 않는다. 아마 숭례문 복원 후에 공간이 넓혀졌는지는 모르지만, 숭례문 왼쪽 옆 성곽이 너무나 과감히 잘린 모습을 보니 안타까움이 너무 크다. 아예 화재 이전처럼 성벽이 양쪽 모두 없었던 게 나았을 것 같기도 하다. 

좀 더 걸으니 왼편에 덕수궁 정문이 있고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 있는데 전통복장의 군인들이 행사를 벌이고 있다. 그리고 오른편에 서울시청 건물이 보인다. 넓은 광장을 앞에 둔 일제강점기 세워진 오래된 근대식 건물이다. 중앙청 건물이 해체된 후 이 근처에서는 숭례문 다음으로 랜드마크적인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바로 뒤편에는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듯한 거대한 푸른 파도 모습의 제2 건물이 있다. 완공된 지 7~8년은 되었을 것 같은데, 필자의 의견으로는 이 경우 이러한 스타일보다는 시청건물이 한 부분 같아 보이는 좀 더 크고 높은 건물이면서, 주변과 차별화된 듯하면서도 잘 조화된 건물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물론 건축가의 아이디어와 그 당시 시청 담당자들의 의견도 중요하다고 보지만, 건축물 더구나 공공건축물은 미술품과 달라야 한다. 한두 사람의 생각이 가치를 갖는다기보다는 많은 시민들의 공감을 얻어야 하고, 주변과 조화를 이루거나, 파격이라 할지라도 주변을 변화시킬만한 영향력을 가져야 할 것인데, 좀 아쉬움이 있다. 물론 필자의 생각이다.

서울은 더구나 서울역-숭례문-시청-광화문으로 연결되는 도로는 광화문광장, 청계천, 인사동 등과 함께 대한민국의 상징이다. 이곳은 많은 시민들과 국내외 관광객들이 찾는다. 과거 20~30년 전에도 서울시의회, 세종문화회관 등과 같은 큰 건물들도 있기는 했지만 작고 낡은 건물들도 많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더욱 큰 건물들 많아지고 '빌딩화사드'도 다양해지고, 빌딩 앞 공간들이 넓어지고 '스트릿퍼니쳐'도 많아졌다. 차량도 많지만 도로변은 걷기 좋게 연결되어 있다. 서울역 위를 지나던 고가도로는 '공중공원'이 되어있고, 복개되었던 청계천은 맑은 물 흐르고 고기들 뛰노는 '도심 자연형 하천'으로 변해 있다. 

필자는 60~70년대를 서울에 머문 사람이라서 화려해진 서울의 모습 속에 과거의 모습들이 엉켜 떠오른다. 거리를 누비던 전차, 가을이면 황금빛으로 물들던 은행나무 가로수, 무교동 시끄럽던 막걸리집, 종로 피맛골 빈대떡집, 제대로인지는 몰라도 기억나는 것들이다. 대학 입학 후 고교 동창들을 만나던 곳은 낙원동 몇 층인가 큰 다방이었고, DJ하는 친구 일 끝나기 기다렸다가 인근 탑골공원 옆 튀김집에서 막걸리 한잔들하고 떠들며 남산까지 가고 죽 밤길을 걸어 순환도로를 거쳐 장충체육관 앞으로 내려와 헤어지고는 했었다. 

중1때쯤 시골집에서 방학을 보내고 완행열차를 타고 서울역에 내리면 수많은 인파들 사이에 잡채 등을 파는 행상 아주머니들과 여관 호객꾼들도 많았고, 슬금슬금 옆으로 와서 '학생 갈 데 없어?' 묻는 이들도 있었다. 

내가 살던 용두동, 제기동, 도화동 등에는 소위 집장사들이 지었다는 단층 기와집들이 줄지어 있었고 개천 변에는 판자집들도 많았다. 휴일이면 꼬마들이 갈 곳이 창경궁 정도였지만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케이블카도 타 보았다. 

이제 꽤 많은 세월이 흐르고 서울은 많이 변했다. 동경 같기도 하고 LA 같기도 한 보편적인 대도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경제가 어렵다고들 해도 다들 잘 사는 것 같고, 길거리 인파들의 표정도 밝아만 보인다. 우리 서울도 글로벌도시가 되어가는 것 같다. 가난하던 우리나라며 서울이.

하지만 숭례문, 덕수궁 등 우리의 남겨진 유산들은 잘 보전해야 할 것이고 우리의 자랑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역사물들은 끝없이 보수해나가야 하는데 고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도시의 기능이 크게 중요하다 하더라도 역사물이 망가져도 안 되고 어색해 보이게 해서도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