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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는 여름 철새로 울산에서는 5월 말부터 8월 초까지 관찰할 수 있다. 파랑새목 파랑새과에 속하는 중형의 여름 철새이다. 

파랑새의 한자는 청조(靑鳥)이다. 어느 날 창공에 파랑새 울음소리가 들리면 여름이 가까이 오고있음을 날씨로 느낄 수 있다. "느린 굼벵이도 석 자를 뛴다"는 소만(小滿)과 망종(芒種) 사이 15일 간쯤이다. 

파랑새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번식하며, 여름이 지나면 남쪽으로 이동한다. 주로 열대지방의 고산 밀림지대에서 서식한다. 인도, 보르네오섬, 오스트레일리아 등이 안정된 서식지에 속한다. 

몸의 색깔은 이름처럼 전체적으로 파란색 바탕이며, 청록색과 코발트색을 띤다. 특히 날개짓할때는 날개 밑에는 흰색의 둥근 모양이 뚜렷이 보인다. 흰색의 둥근 모양이 마치 태극기 모양처럼 보여 지역에 따라 태극새로 부르기도 한다. 꿈과 희망을 상징하는 파랑새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울음소리는 '케엣, 케엣' 또는 '케케켓, 케에케켓', '깨깨객객객' 등으로 일반적으로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다. 

파랑새는 불교와 관련된 설화에 자주 등장한다. 이는 인도, 중국, 한국, 일본 등에 파랑새가 서식 및 번식하는 새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불교가 인도에서 발생하여 동쪽으로 전해졌기에 설화의 공유 차원에서 파랑새의 등장으로 접근할 수 있다. 

먼저『위서(魏書)』에는 파랑새를 삼보조(三寶鳥)로 기록하고 있다. 삼보는 불교에서 불법승(佛法僧)을 말한다. 파랑새는 밀림에 서식하며 주로 곤충을 먹이로 한다. 인도, 중국, 한국, 일본 등 불교 수행처는 대부분 산속에 위치해있다. 그런 까닭으로 포유류 및 조류를 일상에서 만날 수 있다. 

이런 생활 속에서 중국의 수행자들은 파랑새의 울음소리가 마치 삼보를 찬탄하는 범패승의 범패 연장선상에서 정서가 옮겨 받아들여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정서에서 연유된 파랑새는 중국의 불자들은 파랑새가 공중을 날아다니면서 큰 소리로 우는 것이 마치 불법승을 찬탄(讚嘆)하는 정서의 바탕에서 생성된 새 이름으로 전승됐을 것이다. 즉 파랑새의 '케케켓, 케에케켓' 울음소리를 붓, 보∼, 소∼으로 감정 이입됐을 것이라 짐작된다. 

파랑새 울음소리는 현대사회의 관점에서는 소리공해 스트레스로 접근할 수 있을 만큼 시끄럽다. 이러한 울음소리와 행동은 파랑새 입장에서보면 세력권 알림, 세력권 보호 등 생존전략이다. 특히 새끼의 육추기간에는 경계가 심하며 울음소리 또한 시끄럽다는 느낄 정도로 심하게 운다. 

자칫 소리공해의 주범으로 쫓아낼 대상인 파랑새의 울음소리지만 주로 산속에서 수행하는 불교수행자는 계절마다 무상으로 변하는 자연 속의 시끄러운 파랑새 울음소리마져 긍정적 감정 이입으로 삼보조로 이름 붙여 공존했음을 알 수 있다. 

파랑새는 우리나라 불교 관련 설화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새이다. 

"원효가 길을 가서 다리 밑에 이르니, 한 여인이 개짐을 빨고 있었다. 법사가 마실 물을 청하니 여인은 그 더러운 물을 떠서 드렸다. 법사는 이를 엎질러 버리고 다시 냇물을 떠서 마셨다. 때마침 들 가운데 소나무 위에서 파랑새 한 마리가 불러 말하기를, 제호화상은 그만 두시요!라고 하고는 홀연히 숨어버리고 나타나지 않았다. 그 소나무 아래 벗은 신발 한 짝이 있었다"『삼국유사Ⅲ』<낙산이대성 관음정취조신〉

여기서 청조 즉 파랑새는 관음보살의 화신으로 암시하고 있다. 이렇듯 파랑새(靑鳥), 청의동자(靑衣童子) 등 불교에서 파랑이 부각·강조되는 것은 관음보살의 화현으로 상징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불교 파랑새 문화와 다르게 민요 <새야 새야 파랑새야>는 조류행동학적 접근보다 시어의 함의로 접근한 노래이다. 

파랑새는 결코 녹두밭에 앉지 않기 때문이다. 파랑새는 주로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곤충을 잡아먹기 때문에 녹두밭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노래 속의 파랑새는 희망, 비전의 간접 화법으로 생각된다. 

사람은 누구나 꿈이 있다. 일연 스님은 《삼국유사》를 통해 '홀아비는 여인을, 도둑은 재물이 가득 찬 창고를 꿈에 그린다(鰥夢蛾眉賊夢藏)' 했다. 각자가 처한 사정과 환경에 따라 원하는 것이 다르게 나타난다. 

파랑새도 사람들이 바라는 꿈으로 나타난다. 파랑새는 주로 자유로 상징하기도 한다. 한센병 시인 한하운(韓何雲, 1919~1975)은 파랑새를 꿈꿨다. 그의 시 <파랑새〉를 통해 다음 생에는 고통받는 몸을 벗어나 푸른 하늘을 맘껏 날아다니는 자유스러운 파랑새가 되길 표현하고 있다.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가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 날아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며 예으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가 되리(『보리피리』, 1955)

 파랑새는 희망의 새며, 자유의 새, 삼보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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