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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

전정희

애벌레 뽕잎 먹고 비단실 뽑고 있다
이보다 아름다운 죽음이 어디 있으랴
한 마리 나비를 꿈꾸는 애벌레의 꽃잠 속

철거덕 쇳소리로 빗장을 닫아걸고
덜미 잡힌 그리움이 목젖까지 차오르면
잠이 든 신화를 깨워 행간 속에 불러본다

풋내로 어지럽던 누에들의 네 벌 잠
하얗게 결이 삭아 매듭조차 지워지면
몸속에 갇힌 날개들 결박을 풀고 있다

△전정희 시인: 조선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물에도 때가 있다' '자작나무에게' 등.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울산문학상, 울산문학작품상 등.
 

이서원 시인
이서원 시인

춘추시대 오나라와 월나라는 서로 패자가 되기 위해 날마다 전쟁이 벌어졌다. 어느 날 오나라의 '종리' 고을 여인과 월나라 '비량지' 고을의 여인이 국경 지역에서 누에 먹이인 뽕잎을 따는 일로 서로 싸웠다. 각자 많이 따려고 다투다 끝내는 두 집안의 여인들 싸움으로 번졌고 마침내 종리 고을의 여인들이 모조리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오나라 왕은 분노해서 전쟁을 일으켰고 초나라 평왕도 이에 질세라 서로 물러설 수 없는 한판을 벌이게 됐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전쟁의 발단이지만 누에는 그 당시 생계와 직결되고 나아가 비단의 실을 뽑아내는 중요한 생업이었다. 때문에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목숨과 직결돼 있어서 집안싸움, 고을 싸움, 국가 간의 싸움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위의 시도 제목은 '만년필'이지만 실상은 동일 선상에 '누에'를 놓고 있다. 누에가 네 벌 잠을 자고 일어나면 스스로 고립의 집을 짓는다. 고치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자기 입에서 뽑아내는 하얀 실로 천상의 집을 짓고 마침내 그 안에서 스스로 갇혀 나비가 되기 위해 찬란한 죽음을 아름답게 받아들인다.


'철거덕 쇳소리로 빗장을 닫아걸고'나면 이제 다시는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절대 고립의 시간을 홀로 견뎌내면서부터 시는 새롭게 전개된다. 즉 누에가 실을 자아내듯이 만년필도 자신만의 천상의 노래를 불러내고 있다. 절대고독의 외로움을 넘어 행간 속으로 가져오는 무수한 신화 같은 이야기들 그것이 곧 시가 되는 것이다.


옹골찬 누에의 맹서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뽑아내지 못했던 언어, 자신을 결박하며 외부의 그 어떤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보인다. 그 누에는 작가 자신임과 동시에 또 앞으로 노래해야 할 분명한 철학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틀림이 없다. 어느 날 분명히 '몸속에 갇힌 날개들'의 '결박을 풀고' 비상(飛翔)함을 믿기 때문이다.
작가는 누에를 보면서도 만년필을 가져왔고, 마침내 두 대상의 개별성을 동일성으로 합일점을 찾아냈다. 그것이 바로 감각적 독창성이다. 섬세하고 예리하고 독특하게 보아내고 그 보아낸 것을 다시 관계를 맺어주는 중매쟁이가 곧 시인이다. 이 시인의 중매가 청춘 남녀(시적 대상)의 아름다운 결실로 풍성해 질 것임을 믿는다.  이서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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