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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은 '성곽의 도시'다. 가장 오래된 관문성을 필두로 언양읍성, 병영성, 개운포성, 서생포왜성 등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성곽들을 갖고 있다. 울산은 해안을 통한 교류와 해상교통의 요충지였으며, 국토방위상 중요한 군사거점이 되어 왔던 곳이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서생포 왜성은 왜적이 이 땅을 침탈하고 쌓은 독특한 스토리를 가진 성이다. 바로 이 성의 복원 문제는 오래전부터 울산의 숙제였다. 치욕의 역사를 지워야 한다는 주장과 아픈 역사도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주장이 상충된 현장이다. 논란이 거듭되면서 서생포왜성에 대한 복원 및 정비도 지지부진했다. 최근 들어 울산이 관광도시로 거듭나면서 다양한 콘텐츠 개발이 과제가 됐다. 그러자 관광객을 위한 볼거리 확충 등 관광자원화를 위해 서생포 왜성의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울주군은 지난 2017년 5월, 서생포왜성의 체계적인 정비를 목적으로 8,900여만 원을 들여 서생포왜성 종합정비계획 용역을 한국산업관계연구원에 의뢰해 그 결과를 발표했다. 용역결과 총사업비 302억 원을 들여 발굴조사와 성곽복원, 수목정비 및 해자복원, 주차장 조성, 탐방로 정비, 방문객 편의시설 조성 등이 포함된 5개년 단위의 단기계획과 외성 출입문·문루 복원, 왜성 구조물 복원, 사유지 매입 이주 사업을 내용으로 하는 중장기 계획이 발표됐다. 

그러나 용역 이후 진행 사항은 용역 결과와는 판이하게 다르게 속도가 더디다. 지난해부터 2022년까지 서생포왜성 보수와 주차장 부지 조성, 수목정비, 창표사에 단청을 칠하는 것이 전부다. 이에 앞서 지난 2016년 6월, 전체 8억 6,000여만 원을 들여 사라졌던 임란공신 위패를 모시는 창표당을 건립했고, 2017년 총 2억 원을 들여 언양읍성과 서생포왜성을 대상으로 증강현실 콘텐츠를 제작해 추진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복원과 정비 사업이 더딘 이유는 문화재 보호사업이 매번 사업순위에서 밀리면서 예산 확보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또한 서생포 왜성의 경우 국가지정문화재에서 지방문화재로 격화되면서 지자체의 복원 및 정비의지가 크게 시들해진 것도 한몫을 한다.

서생포왜성은 1963년부터 서생포성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지정 문화재 사적 제54호로 관리돼왔지만 1997년 정부의 역사바로세우기와 일제잔채 청산 사업의 일환으로 울산시문화재자료 제8호로 격하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생포왜성 성곽은 국가지정 문화재 당시에 비해 크게 훼손된 상태로 오랫동안 방치돼 왔다. 그나마 서생포왜성 종합정비계획이 추진되면서 지난해부터 1억 6,000여만 원을 투입해 무너진 내성 보수공사에 들어갔지만, 최근 성벽의 배불림 현상이 나타나면서 공사가 일시 중단된 상태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서생포 왜성과 함께 서생면 화정리 산68 일원에 위치한 서생포 만호진성이다. 조선시대 전기 울산에는 서생포 만호진성, 염포진성, 개운포진성 등 세 곳의 수군진성(水軍鎭城)이 있었다. 진성(鎭城)은 국경 및 해안지대 등 국방상 중요한 곳에 쌓은 군사적 성격의 성이다. 서생포 만호진성에 대해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지리지 등에는 '울산읍성을 밖에서 보호하는데, 만호는 3품이며 병선 20척, 군졸 767명이 성에 상주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이러한 문헌기록을 참고할 때 축성 시기는 조선 초기일 것으로 추측된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왜군에 의해 함락돼 폐성됐다가 정유재란이 이후에는 서생포왜성으로 진을 옮겨 1895년까지 수군(水軍)의 동첨절제사영(同僉節制使營)으로 유지됐다. 서생포 만포진성은 북쪽으로는 회야강이 동쪽으로 흘러 바다와 합류되고 있어 수군이 활동하기 유리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성은 구릉의 말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구릉의 경사면과 평지를 연결해 축조한 포곡식(包谷式) 성이다. 성벽의 길이는 440m 정도로 남아 있으며, 평면 형태는 평지에 해당되는 성곽이 멸실됐기 때문에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지만 말각 방형에 가까운 형태일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는 곳곳에 성벽의 기초석 일부가 남아 있는데 이는 임진왜란 시기 왜군이 서생포성을 쌓기 위해 성돌을 빼갔기 때문으로 보인다. 성벽은 장대석을 가로눕혀 지대석으로 삼고 그 위에 대형의 석재로 기단석을 쌓았는데 상부로 갈수록 이보다 작은 돌로 면을 맞춰 쌓았다. 내부는 소형의 할석으로 뒤를 채워 마무리한 것으로 추정된다.

발굴조사에서 돌로 양 벽을 쌓은 원 해자와 개축 또는 보수된 2차 해자가 확인됐다. 해자는 적의 침입을 1차적으로 방어하는 목적으로 쌓았으나, 동시에 산사면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성벽을 훼손하지 않도록 외측으로 돌리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만호진성과 함께 지난 2016년 8억 원이 넘게 투입돼 건립된 창표당 역시 소중한 문화 콘텐츠다. 진하해수욕장과 서생해안, 그리고 간절곶으로 연결되는 천혜의 자연과 역사문화 콘텐츠가 연결된 이 일대는 관광자원화의 다양한 소재를 가진 곳이다. 왜란과 호국의 현장으로 새롭게 조명한다면 울산의 또 다른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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