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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자국 기업이 한국에 반도체, 디스플레이 제조용 핵심 소재를 수출하는 것을 제한하고, 전략물자 수출 시 혜택을 주는 '백색국가'에서도 제외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참의원 선거를 앞둔 아베의 정치적 술수다. 한국도 강경 대응을 예고하고 나섰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로 촉발된 양국 갈등이 전면전으로 비화하는 양상이다. 아베는 왜 이렇게 강경한 태도로 일관할까. 여러 가지 배경이 있지만 무엇보다 아베의 뿌리에 깔린 선민의식, 우월주의와 연관성이 있다. 아베의 유전인자는 원초적인 '극우'다. 자민당 파벌 중 가장 우파인 기시 파벌을 만든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가 그의 외조부다.


총리를 지낸 사토 에이사쿠가 작은 외조부이고, 아버지는 외상을 역임한 아베 신타로다. 사토는 좀 성향이 달랐지만, 기시와 아베 신타로는 모두 친미·탈아시아, 중국 봉쇄, 침략역사 부정을 전면에 내세우는 '한국·대만 로비스트' 인맥의 중심인물이었다. 기시가 누구인가. 옛 만주국의 '그림자 총리'로 통했고 2차대전 후 A급 전범으로 사형 직전까지 갔던 인물이다. 친미주의자인 그의 동생, 즉 아베의 작은 외조부 덕에 살아난 기시는 미국이 만든 꼭두각시 친미총리로 전후 일본을 리모델링했다.

 

그가 총리 때인 1960년 미국 주도의 냉전체제에 가담하는 방향으로 일본은 미-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해 일본이 미국의 가장 가까운 우방으로 자리하게 했다. 역사를 부정하고 한술 더해 조작과 왜곡을 일삼는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은 가히 왜곡의 달인이다. 그래서 일본의 역사를 조작의 역사라고까지 이야기 한다.


임진왜란 시기부터 조작된 것으로 알려진 일본의 역사서 일본서기는 일본인들이 과거사 치매에 면죄부 역할을 담당해 왔다. 사실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이 보인 탈 아시아적 태도는 메이지 쿠데타를 주도한 3류 사무라이들의 얄팍한 국수주의가 그 뿌리다. 이토 히로부미 등 3류 사무라이들은 300여 년 간 지속되어 오던 도쿠가와막부의 '평화의 시대'를 거부하고 '살육의 시대'를 선택했다. 그런 의미에서 메이지 쿠데타는 일본에 있어 근대화의 시작이기도 하지만, 섬나라 일본의 '광기의 역사'가 시작된 세계사의 불행이기도 했다.


왜곡하고 도발하고 막말을 하더라도 미국이라는 거대한 지렛대가 굳건히 버틴다면 한국의 반발은 별게 아니라는 게 아베의 인식이다. 문제는 아베식 외교의 본질이다. 도끼로 찍어버리고 싶은 발언들은 함부로 쏟아내면서도 그 분노를 언제나 외교적 수사와 미국의 도움으로 비켜갈 수 있다는 게 아베식 과거사 극복 전략이다.

 

어쩌면 과거사의 열등감을 오늘의 언어로 미화하려는 고도의 계산된 행보인지도 모른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아베의 광기어린 외교와 수출규제를 제대로 살펴야 한다. 사과하고 반성하면 징용배상 문제도 풀린다고 외쳐봐야 아베가 제대로 반응할 리 없다. 스스로 역사의 진실 앞에 겸허해질 수 있도록 객관적 자료와 사실을 끊임없이 알려야 한다. 그리고 당당하게 국제사회와 함께 울산 우익의 왜곡된 시선을 바로 잡아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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